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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강세형)

by 하트입술 2012. 3. 23.


나는아직어른이되려면멀었다청춘의밤을꿈을사랑을이야기하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강세형 (김영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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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동생이 빌려서 반납하려던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빌려서 왕복 출퇴근길에 다 읽어버렸다.

제목 그대로.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라디오 작가 강세형씨가 쓴 글들...
감성돋는 그림과 구성.

2쪽 혹은 3쪽씩 짧은 호흡으로 쓴 글들이 많이 공감이 가더라.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블로그에 글을 쓰다보면, 완성된 장문의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단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스스로 불편했는데~
강세형씨가 쓴 글을 보며, 단문의 글도 괜찮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나?
단문의 글을 모아 책을 낸 것을 보고 말이지...

아! 그리고 이 책은 위로가 되더라.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다 이런거구나 하는 위로...

문제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너만 힘든거 아니야!"라고 위로는 되지만, 해결책은 없다는 것.

결국 해결책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거겠지...

부분부분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았는데 그 중 몇 곳을 발췌해보고자 한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 아닐까?
안 그래도 힘든 길, 과연 내가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있을가?
처음부터 내겐, 재능 따윈 없었던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던 어떤 날이었으리라.
그러다 어느새
머리가 텅 빈듯 멍해져 버린 날이었으리라.

나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그리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자동판매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버튼만 누르면 아이디어가 자동으로 쑥쑥 나오는 자동판매기.
내가 그런 자동판매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 44 page


어제 저녁에 호주 시드니대에서 유학 중인 지혜와 카톡을 했다.

지혜: 사는 데 걱정할 게 왤케 많냐? 에휴~ 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거 같고...
         몰라 되는대로 해야지... ㅠ.ㅠ
나: 난 나이 먹음 내가 꿈꾸던 대로 살고 있을 줄 알았어...
     네버!! 나이 먹을 수록 더 힘드네

지혜: 그런 거 같다.. 머하려고 힘들게 사나 싶어. 걍 하루하루 즐기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나: 마져.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지혜: 그니까.. 우리 내년 이맘 때 머하고 살고 있을까? ㅋㅋ
나: 그러게 가늠이 안가. 이게 정상적인 삼십대 인가?
지혜: 예측 불가능한거? 정상은 아닌듯 ㅋㅋㅋㅋㅋ
나: 그치~ 남들은 애 낳고 안정적인데, 계속 안정과 도전 중 오락가락
지혜: ㅇㅇ 나도.. 안정하고 싶은데 그러면 아쉬울 것 같고... 그러니까 우리가 피곤할 듯
나: 둘다 가지고파서 하난 포기해야 쉬는데
지혜: 우리가 STJ라 욕심이 많나봐 ㅋㅋ
나: 그런가벼 ㅎㅎㅎ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나랑 지혜.
아니 지혜는 안정적이었었다. 지방직 공무원이었으니... 근데 그녀는 유학을 가고 싶은데 구에서 보내주지 않아서 퇴직을 하고 유학을 갔고~ 난 불안정한 별정직 공무원 신분.

그래서 1년 후 우리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 지 둘다 예측조차 할수가 없다.

지혜는 석사는 마쳤을 테고, 그대로 호주에서 박사를 하고 있을지?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을지? 호주 혹은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난 국회에 계속 있을지? 아니면 시민단체에 있거나 대학원에서 박사를 하고 있을지?
이도 저도 아니면, 결혼해서 집에서 얘 키우고 있을지?

선거가 19일 남은 지금. 한달 후 내가 어디에서 근무할지도 예측할 수 없는 나날.

왜 이 나이에도 이리 불안정한 걸까?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내 길일까?

아마도 그때가
그 사람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었는데도
그 사람은 내게 선물을 주었다.
책인 듯 보이는 선물을 난 그자리에서 풀어보려 했고
그 사람은 그러지 못하게 했다.

그 사람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포장을 풀었을 때
역시 그 안에는 책이 한권 들어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관계>.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책의 첫장을 넘겼던 순간,
그리고 그 첫 페이지에 적혀 있던 그 사람의 글귀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 사람과 나는 정말 어떤 관계였을까?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그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갖지 못했다. - 70~71 page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그와 헤어진 후에도 난 종종 그를 만났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같은 학교를 졸업한 그가 학교에 올 때마다 날 찾아왔던 거다. 

어느날인가, 그는 과 행사가 있다며 학교에 와서 나에게 CD를 하나 주고 갔다. 
"편지"라는 노래를 들어보라고... 그가 주고 간 CD는 브로컬리 너마저...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가 아프진 않니 괜찮니
너 아직도 나를 욕하니
아니면 다 잊어버렸니 괜찮아

여기서 만난 사람들
커피가 맛있는 찻집
즐거운 일도 많지만
가끔 네 생각이 날 땐
조금은 미안했었어
있잖아

사실 나 더 높은 곳을 보고 싶었어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어
있잖아

사실 나 그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서 미칠뻔했어
있잖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만난 사람들
커피가 맛있는 찻집
즐거운 일도 많지만
가끔 네 생각이 날 땐
조금은 미안했었어
있잖아

사실 나 더 높은 곳을 보고 싶었어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어
있잖아

사실 나 그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서 미칠뻔했어
있잖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책을 보며, 헤어진 후 이 노래를 들어보라며 CD를 선물해준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울컥.

그는 나에게 왜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프지 않는지, 욕하지 않는지?" 이런 내용이 담긴 노래를 들으라며 CD를 줬던걸까.

그 후에도 그와 난 두어번 더 만났고...
우리의 관계는 그의 결혼으로 완전히 종결되었다.

아. 결혼 후에, 메일이 한번 왔었다.

잘 살고 있겠지? 아마도...

꿈꿀수 있는 청춘.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 가져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해보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청춘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그리고 하나하나 이뤄갈 때 느낄 수 있는 기쁨.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기쁨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청춘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는 선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 과정이 비록 무척이나 힘겹다 할지라도
꿈꾸는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행복하다는
선배의 말, 그 교수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나에게도 올까? - 109 page

지금의 난 꿈꾸는 청춘일까?
아니... 내가 청춘 맞는걸까?
최근 청춘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읽으며, 내가 청춘이 맞는지 반문하는 나날.
삼십대 초반. 청춘인거 같기도 아닌거 같기도.

아직 꿈꿀수 있는 나이 맞겠지?

근데 내 꿈이 뭔지...
요즘엔 내 꿈이 뭔지 까먹은것 같다.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사는데 일조 할 수 있는 삶" 그런 삶.

어떤 영화에
자신을 자꾸만 다그치는 여자에게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당신은 왜 늘 계획을 세우라고 하지?
왜 항상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지?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물론 미래에 대한 준비, 짜임새 있는 인생 설계,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항상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은 다 뭐라도 하고 있는 것 같고
남들은 다 뭐라도 배우고 있는 것 같고
남들은 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나는 마냥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

사실은 그것도 힘든 건데.
제자리에 서 있는 것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도,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며 사는 것도, 사실은 참 힘든 건데. - 131 page


'항상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 강박관념이 나만 있는게 아니었구나...
무언가 할일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압박하는 모습.
정말 나쁜 습관. 도대체 왜 이런걸까?

왜 늘 계획을 세우고, 왜 항상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는건지...
그냥 있는 그대로 편안히 살지 못하는건지~

스스로 왜 이리 많은 압박을 주고 있는걸까?
내 자신이 이해가 안감. ㅋ

그런 책이 있다.
그런 영화가 있다.
마지막 장의 마지막 마침표까지도 이미 다 확인했지만
쉽게 놓아지지 않는 책.
회색으로 변해벌니 스크린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쉽게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영화.

그리고 그런 사람 또한 있는 모양이다.

분명 이젠 다 끝났다는 걸 알지만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쉽게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댈 수 없는
쉽게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도 없는 그런 사람.
참 여운이 긴, 그런 사람. - 215 page


그냥... 이 구절 좋아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