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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눈

by 하트입술 2013. 9. 13.
나는 여자치고는 길눈이 꽤나 밝은 편이다. 아니, 아주 많이 밝다.
길눈이 밝으면 이동이 편해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오해를 받은 적도 왕왕 있다.

대학 때 연애를 했던 R군은 성균관대 학생이었고 집이 수원이었다. 그래서 우린 신천, 강남, 사당(수원가는 버스가 있는 곳)에서 주로 연애를 했고, 간혹 내가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녀석을 위해 안양(1호선)이나 산본(4호선)을 가기도 했다.

태어나서 안양을 처음 가본 날.
녀석과 노량진에서 만나서 안양역 까지 갔다. 그리곤 안양역을 나와서 번화가(?)라는 안양1번가로 향했다. 지하도를 건너서 갔는데 지하도에서 나와서 저~멀리 보니 횡단보도가 있길래 "다시 안양역 갈 땐 횡단보도로 건너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놀다가 다시 안양역을 가는 길.

손을 잡고 지하도로 내려가려는 남친에게 "저~기 횡단보도 있던데, 횡단보도로 건너자!"고 하니, "너 여기 누구랑 와봤어??"라며 추궁에 들어간 R군. 안양역 처음 오는거라고, 너 때문에 우리집에서 겁나 먼 안양까지 가는거라고 생색에 생색을 내면 갔던 안양역인데 "저~기에 횡단보도 있다"고 하니 R군이 의아해서 갑자기 취조모드로 돌변을 한 것!

아까 안양역에서 나오며 봤다고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믿더라... 계속 "누구랑 왔는지 말해!"라고 반복하던 녀석. 그 땐, 그 뿐만아니라 나도 내가 길눈이 밝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 그냥 다들 그려려니 하고 그렇게 인지를 안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길눈이 밝다는 걸 인지한건 한~참 후의 일이니!

이게 길눈과 관련된 내 기억속 첫번째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후, 대학원을 다닐 때 연애를 했던 Y군.

그는 5호선 애오개역과 공덕역 사이의 주택에 살았었다. 항상 우리집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그의 집 근처로 갔던 어느날. 그는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나왔고, 그의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가서 놀다가 다시 차를 타고 지하철역에 간 적이 있었다. 차로 가면서, "걸어가면 가까울거 같은 거린데 일방통행 때문에 빙빙 돌아가야 하네?"란 생각을 하며 갔던 그 길.

그 후 다시 한번 남친 동네에서 약속을 잡았을 때, 내가 일찍 도착해서 그 집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리곤 단박에 찾아냈다. 남친 집 앞에 서 있었더니 놀라던 남친의 모습. "우리집 어떻게 찾았어?"라며 말이지...

그는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으려나? 하하하! 지금도 기억나는 위치인데....

여하간 여자 치곤 좋은 길눈 덕분에 요즘 운전을 매우 잘 하고 다니고 있다. 어지간해선 지났던 길을 기억을 하니 말이지.. 푸흐흣!

그런데, 내가 전 남친집 위치를 기억하듯이, 내 전남친들도 우리집을 기억하겠지. 그들에게 우리집과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갑자기 엄마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자친구랑 헤어질 때 야박하게 굴지마!!!"
"왜???"
"***동 *집사님 딸, 헤어진 남자친구가 앙심을 품고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여자애 머리를 벽돌로 내리쳐서 응급실 실려갔어..."

그 후 난 누군가 집에 데려다 줄 때 집 앞이 아닌, 아파트 앞에서 내리는 중!

아직 별 사건사고 없는걸 보면 난 착하게 잘 헤어진거야.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