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제차를 탄 남자

by 하트입술 2013. 9. 14.

서른두살의 가을.

부모님의 결혼 압박이 올해들어 상당히 거세졌다. 딸래미가 혼자 독수공방을 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는지, 엄마가 개강 전 여러개의 선자리를 물어(?)오셨다.

스펙이 너무 좋아서 "이런 사람들이 왜 결혼을 못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남자들.

허나, 그들을 만나고 난 후 그들이 "도대체 왜" 결혼을 하지 못했는지 절로 알게 되었다.
너무 샤이하거나, 너무 범생이거나, 너무 싸가지가 없거나!!!

샤이하거나 범생인 분들과의 선 자리에서는 최대한 그분들이 편안해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나는 배려심 돋는 여자니깐!

그.러.나. 너무 싸가지가 없었던 한 분.
그 분은 정말 영 아니라서 결국 말로 한방 먹이고 말았다. 그렇게 한방 먹이면 분명 엄마 귀에 "싸가지 없는 애" 혹은 "까칠한 애"란 말이 들어갈게 뻔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이상한 촉은 약속을 잡기 위한 전화통화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촉이 이상할 땐 나가는게 아닌거 같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피해야 했다)

내가 국회에 다닌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첫 통화 때 새누리당의 주요 의원들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어느 의원실을 다녀왔다드니 말을 늘어 놓길래, "교수가 국회의원을 왜 만나지(그 사람 직업은 교수이자 모 대학 운동팀 감독이었다)?" "운동팀 때문에 국회의원들 만날 일이 있나?" 생각 했었다.

전화통화로도 느껴지는 과한 자신감.
자신감이 없는 사람보다는 넘치는 사람을 좋아하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불편한 정도 였지만 만나면 다르겠지 하고 만나러 나갔다.

여의도에서 보자던 그 남자. 난 "여의도에서는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보자"고 했는데도 그 남자는 여의도로 오겠다고 우겼다.

여의도에서 만나야 한다면, 장소를 정해서 보자고 몇번이고 말했으나 그 남자는 데리러 오겠다고 우겼고, 결국 6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앞으로 왔다. 외제차를 몰고서...

퇴근을 하고 건물 밖으로 나가니 계단 바로 앞에 세워져 있던 그 남자의 차. 누가 볼까 싶어 후다닥 뛰어내려가서 차를 타는데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 "***! 어디가?"

아... 왠수. 다른 의원실에서 일하는 친한 친구가 차를 타려는 나를 보고, 완전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이름까지 부르며 어딜 가냐고 부르짖은 것!
(퇴근길 건물 정문에서 이름 불리운건 올해만 2번째, 올 봄에 슬럿데이라며 친한언니들과 퇴근길에 야한옷으로 갈아입고 홍대 가던 길. 그 때도 정문을 나서는데 뒷에서 친한 다른 언니가 "***! 옷 입고 다녀!!"라고 2번이나 소리질렀었는데... 이번엔 "***! 어디가?"라니 하아~~)

차 문을 여는 찰라에 친구의 고함소리를 들어서, 모르는 척 하고 차를 탔다. 그랬더니 바로 오는 그 놈의 전화 그리고 단체카톡(그 사이 단체카톡 창에 내 만행(?)을 알려서 지탄을 받은)...

그렇게 그 남자와 이동을 해서 커피를 마시는데, 어찌나 잘난척을 하시는지...
그래. 멀쩡한 스펙에 집안도 좋고 외모도 멀쩡한데 서른 후반까지 결혼을 못한건 다 이유가 있는거겠지.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맞장구를 쳐 주다가 막판엔 시니컬 모드 발동.
결국엔 본인이 대학팀 감독을 하는 운동을 좋아햐냐 묻길래, "싫어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맞장구 쳐주기도 너무 짜증이 나서 말이지...

순간 벙쩌하던 그 남자의 표정.

역대 소개팅과 선 중 최단시간 같이 있었던 그 남자.
왠지 그 남자는 자신을 떠받들여 주는 여자를 만나야 할듯 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며, 내 모습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과도한 자신감 떄문에 상대방이 꽤나 빈정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겸손하게 살자꾸나.

아!!
이 선에 대하여 말은 들은 친구녀석(큰 소리로 어디가냐고 내 이름을 부른 그 녀석!)은 그 남자가 굳이 건물 앞으로 널 데리러 온 건 외제차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을거라고 했다. 
"남자들은 그런 심리가 있다"고 "너가 특이해서 그렇지, 여자들 외제차 보면 잘 넘어간다"고 말이지~

그러고 보면 소개팅이나 선보러 갔다가 외제차 탄 사람 3명 정도 봤는데 난 차 좋다고 훅 넘어가고 그런 타입은 전혀 아닌 듯.
나란 여자 벤츠로 집에 데려다 줬던 넘도 거부한 여자임.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