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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참여연대에서 주최한 '최저생계비 체험'에 참가했었다. 쪽방촌에 직접 들어가서 살진 않았지만, 집에서 살면서 주거비를 제외한 최저생계비로 살아보는 것에 도전 한 것이다.
그 때 최저생계비를 들고 쪽방촌으로 들어갔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의 경험이 책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최저로 살아가기>
교보문고에서 발견하자 마자 바로 산 책. <대한민국 최저로 살아가기>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공간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책이었다.
(사실, 책을 교보문고에서 발견하곤 살짝 서운했었다. 나름 온라인 참가자인데, 참여연대랑 수시로 전화하는데 책이 나왔으면 이야기를 해주지~ 하는 서운함. 그런데 간사들이 바뀌어서;;;)
"뭐가 이리 비싸"
마을 초입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갈 떄마다 터져 나오는 넋두리다. 그나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유일한 식료품 구입처다. 처음에는 대형 할인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입하면 그런대로 식비를 절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할인마트까지 가려면 교통비의 추가 지출이 생긴다. 한 번 오가는 왕복 교통비가 1,800원, 30분 내로 장을 보면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래저래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면 교통비를 감안해도 이득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팡이 공격에 식료품이 하루만 버텨줘도 감지덕지한 집이다. 별 수 없이 교통비가 들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슈파마켓에서 모든 식료품을 정가에 구입해야 했다. 변두리 산동네라는 지리적 위치와 열악한 주거환경은 불편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지출을 야기한다. 우리는 이를 '빈곤세'라 불렀다. 예상치 못했던 빈곤세는 날이 갈수록 그 종류가 많아지고, 덩어리가 커져 갔다. - 46~7 page
가까운 거리에 마트가 있다면, 마트에 가서 싸게 잔뜩 사다놓고 먹겠지만... 그 물건이나 음식에 바로 곰팡이가 끼어 버린다면? 가는데 교통비가 많이 든다면? 그러면 비싸도 가까이에서 조금씩 사 먹을 수 밖에 없다. 차로 마트를 가서 싸게 대거 사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 '빈곤세'
체험 11일차.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체험단은 하루의 일과를 일기로 남겼고, 그날그날의 가계부가 홈페이지에 공개되었다..(중략).. 문제는 은지가 산 '린스'였다. 아침마다 뻗치는 머리를 주체 못한 은지가 린스를 샀고, 기사에 가계부 내용이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이 폭풍처럼 달리게 된 것이다. 야속하게도 은지를 옹호하거나 위로하는 글은 보이지 않았다. 은지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하루종일 침울해 있었다. 다른 식구들이 저 때문에 함께 욕을 먹는 것 같아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다들 서로를 추스르며 위로했다.
...(중략)...
"정말 그래. 사람들 심보가 참 고약한 거 같아요. 가난하면 천원, 이천원 도와주고 싶어는 하지만, 이 사람이 불쌍한 수준을 넘어가면 오히려 공격하고, 비난하는 거 같아요. 최저생계비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몸이 아파서 일 못하는 사람들, 부양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린스를 쓰는 게 그렇게 사치스럽고 과분해보이는 걸까요? 치사한 것 같아 좀."
은지와 동갑내기인 소영은 은지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소영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모습을 발견했어. 오늘 점심 떄 **리아 치즈버거를 사먹었거든. 치즈버거 가격이 1,900원이었어. 그럼 한 끼 단가를 넘지 않잖아. 근데 가게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거든. 가난한 사람이, 최저생계비 받는 사람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어. 그니까 나한테도 햄버거가 가난한 사람들에겐 좀 사치가 아닌가하는 천박한 인식이 있었던 거야. 그런 자신을 발견하곤 줄곧 괴로웠어, 사실."
성호의 고백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사실 모두가 느끼고 있던 자신의 편견이었다. 최저생계삐는 모든 국민의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보장하는 나라의 약속이다. 그 최저생계비가 현실에서 구현하는 삶은 어느 수준인가를 시험해 보는 것이 체험의 목적이었다. 체험단은 주어진 돈으로 최상의 삶을 구현하려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문득 문득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가난한 삶'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일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것은 사치다'라고 규정하는 것. 섬뜩하고 무섭다. 주변에 린스 안 쓰는 여자 본 적이 있었던가. 지극히 일반적인 소비가 누군가에게는 '사치'라고 재단하는 것은 얼마나 우습과 천박한 일인가. 9,570원짜리 린스가 사치로 비난받는 사회. 우리는 정말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까?
- 124~7 page
가난한 사람은 뭐든 최~저로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 '린스'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국민들.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최저생계비로 사는 주제에..." 였던거지... 사회복지 전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로 살았던 2009년 7월.
나는 집에서 사는 온라인체험단이었기에 평소 입던 옷을 그대로 입으며 살 수 있었다.
(장수마을에서 산 진짜 체험단은 옷도 최저생계비 기준에 맞춰서 티 몇개로 여름을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평소 입던 화려한(?) 옷들을 그대로 입고 다녔다. 그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최저생계비 체험 한다며! 이렇게 화려해도 되??"
최저생계비로 사는 사람은 비루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건 우리 모두에게 뿌리깊게 박혀있는 인식인 것 같다.
세금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우리보다 잘 살면 안된다. 정말 최저 생계만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짜 최저생계가 무엇일까? 최저생계를 위한 최저생계비... 그게 어느수준이어야 하는건지?
장수마을에서 최저생계비 체험을 한 참가자들은 1인, 2인, 3인, 4인가구로 나뉘어 생활을 했다.
한부모 가족인 희망이네 집. 거기에 함께 해서 3인가족으로 산 소연씨 이야기.
희망이 엄마는 일을 하느라 희망이가 학교를 끝나고 난 후의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한데, 방과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는 낙인 때문에 가기 싫고.. 학원비는 비싸고,, 학원 끝난 후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희망이를 불량학생들의 아지트라고 가지 못하게 하는 엄마. 그 가족 이야기.
잘 사는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 엄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경제력이 자녀의 대학을 결정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비싼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한 사회......, 이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남들과 같이 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매달 몇 십, 몇 백만원씩의 교육비를 지원해 줄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사교육을 전면 중지시키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이것이 교육 불평등과 가난의 대물림 문제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의 대책을 내어 놓지 모사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희망이에게 희망의 내일이 있는 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거.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다.
'최저생계비에 책정되어 있는 교육비만으로 아이들에게 차별 없는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는 사회라면, 적어도 부모들이 미안해 할 일은 없을텐데...... 그랬으며 좋겠다.'
소연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254~5 page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엄마가 식당일을 하며 살다 수급자가 된 청년. 그나마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왔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충당하며 다니다 졸업.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
"다람쥐 쳇바퀴 있잖아요. 딱 그거 같아요. 수급자로 살아간다는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제자리인 거에요.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으니까 결국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이면서 사는 거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 270 page'
공감을 할 수 밖에 었었던 구절.
요즘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현실...
'최저생계비 체험은 극기 훈련도 아니고, 만원의 행복도 아니고, 먹고 버티기도 아니다.' - 293 page
더치페이가 일반적이지 않은 한국의 '밥값'문화는 오고가는 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매번 얻어먹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이고, 스스로도 염치가 없어 자의든 타의든 밥값 문화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 세끼의 밥. 빈곤은 하루 세 번,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혼자서 밥을 먹고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체험단보다도 1인 가구 기윤과 성호는 나날이 더해가는 무기력을 자주 호소했다. 다른 사람들은 체험단끼리라도 부대끼며 살았지만, 1인 가구 독거남들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에 돈이 이렇게 절대적인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동자동 쪽방의 영식 할아버지도 사람을 참 그리워했다. 성호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왜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햇다. 왜 숨이 턱턱 막히는 지하 쪽방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지 몰랐다. 체험 2주가 되지 않아 성호는 할아버지의 일상을 닮아가는 자신의 하루를 발견했다. 무서웠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최저생계비 50만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식물인간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요."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 북적이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 최저생계비 생활자들은 골방에 고립되어 세상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똑같이 직장을 다니고, 학교를 다니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없이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밥 정'이 만들어 내는 교류와 관계으 고리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의 삶은 가난의 섬에 고립되어 있다. - 296~7 page
최저생계비 관련해서는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았다. 아니 참 많다.
그런데 할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할 말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저 이것 하나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모두 게을러서 저소득층이 된 것은 아니라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나, 사회 시스템이 그들을 저소득층으로 몰아낸거라고...
그래서 그들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그런데 지금의 최저생계비는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