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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판타스틱 개미지옥(서유미)

by 하트입술 2013. 4. 28.

판타스틱개미지옥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서유미 (문학수첩,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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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안의 다양한 인간군상.

정기세일 기간 중 백화점의 모습을 담은 <판타스틱 개미지옥>

전문대를 졸업한 후 취업을 하지 못한 채, 백화점에서 장기 알바중인 소영. 백화점에서 일하기 전엔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일을 하며 좋은 것들만 보게 되면서 가방, 지갑 등 비산 물건을 사 모으다가 카드가 다 정지된 상황이다.

  명세서를 볼 때마다 카드를 없애 버릴까 생각해 보지만 카드값이 많이 나올수록 더더욱 카드를 없앨 수가 없다.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에서 생활비를 떼고 나머지를 카드 값으로 밀어 넣고 나면 현금이 없어서 또 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아가게 된다.그러니 적자의 도미노가 멈추질 않는다. - 10 page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떄도 백화점이 물건 참 잘 팔아먹는구나, 사람들이 돈 참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하루 종일 손님들을 구경하고 직원들과 물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절로 하나 둘 터특하게 되었다. 젊은 여자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저 가방은 어디거, 최고 인기 있는 청바지는 뭐, 입술에서 반짝이는 립글로스는 어느 브랜드의 몇 호. 그렇게 슬슬 매료되어 갔다. 바람이 잔뜩 들어가서 배가 빵빵해지자 자신이 그저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는 것도 망각하게 되었다. - 35 page

  소영은 가끔 미선이 했던 충고를 떠올렸다. 미선의 염려는 옳았다. 백화점은 사람을 좀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방 앞에서 살까 말까 망설일 떄만 해도 가방만 사고 나면 모든 갈증이 다 사라질 것 같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고 더 이상 사고 싶은 것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며칠 사이에 사고 싶은 게 또 생기고 자꾸 목이 마르다. 바닷물을 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 44 page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2년째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윤경. 다시 학교로 되돌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거다. 아무래도 첫발을 잘못 내디딘게 아닐까. 윤경은 그게 걱정이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번 세일이 끝나고 나면 정말 이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13 page

뚱뚱했다가 굶어서 20kg을 뺀 지영. 살을 빼서 날씬은 해졌지만 둥글둥글하던 성격은 포악해진... 그리고 백화점에서 병적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지영

목이 너무 따끔따끔해서 지하 매장에서 음료수를 고르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귀티가 확 풍기는 사모님 둘이 지영의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건이라는 게 아무 데서나 살 게 안더라구. 만들 때부터 엄연히 업소용, 마트용 하는 식으로 나눠서 만든다는 거야. 그러니까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용이 따로있다는 얘기지. 내 친구 신랑이 여기 이사자나. 그 집은 이쑤시개 하나까지도 다 백화점 물건만 쓴데." ...(중략)...
사모님들은 그런 말을 하면서 정육 매장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이도 뒷모습도 우아했다. 지영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열에 들뜬 눈으로 손에 든 음료수 캔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매장에 가득한 물건들도 죽 훑어보았다. 늘 보던 물건들이 갑자기 금테라도 두른 것처럼 새롭게 보였다. 특히 백화점에 들어오는 물건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은 이상하게 지영을 흥분시켰다. 자신은 과로와 피로에 지쳐 몸살에 걸린 일개 계산원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쓰는 물건은 고급이다, 라는 사실은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영은 백화점 물건에 집착했다. -91~2 page

물론 남의 구질구질한 사연 같은거 들으면 우울하고 불편해진다. 말한다고 가난이나 나쁜 사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위로하는 척하면서 결국 멀어져 간다. 그래서 모두들 나야 잘 지내지, 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나 죽고 싶어, 진자 힘들다, 차비도 없어, 라는 말이 있겠지만 그런 말은 목구멍 밑으로 꿀꺽 삼키면서 사는 것이다.
  우는 소리 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간다는 건 보기 좋다. 하지만 뭐랄까. 가끔은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가면무보회를 벌이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고 좀 더 멋지고 화려한 가면을 쓴 사람이 승자가 된다. 원래 어떤 얼굴인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 103 page

고등학교 졸업 후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어 대학교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한 미선과 할인점에서 미백치약을 판매하며, 휴일에는 백화점 개장 시간에 백화점을 가서 꼭대기 층부터 지하까지 백화점을 한바퀴 돌며 스트레스를 푸는 컴플레인 대마왕 현주.

일을 할 때마다 쌓이는 스트레스나 참을 수 없는 기분, 낮아지는 자존감 같은 것은 쓰레기통 안에 차곡차곡 모아 둔다. 오늘처럼 쉬는 날이 바로 그 쓰레기통을 비우는 날이다. 백화점 직원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들 그런 식으로 바통을 넘겨주며 사는 것이다. - 63 page

백화점 앞에서 상품권을 사고파는 영선

사실 백화점이라는 데가 좀 그렇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주인공이다. 직원들은 그저 물건을 파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비싼 물건을 만지고 있다 보니 자신이 그 물건의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몸에 걸치고 있는 유니폼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엄청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 129 page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 다양한 인간군상들...

<판타스틱 개미지옥>을 읽으며, 내가 백화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떠올리며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다는...

현대 물질문명이 극명히 드러나는 곳. 백화점.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인듯.

근데 난 백화점 간지가 꽤 된 듯 하다. 봄 옷 사러 가야하는데.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