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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밑줄 긋는 여자(성수선)

by 하트입술 2013. 3. 3.

밑줄긋는여자떠남과돌아옴출장길에서마주친책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성수선 (엘도라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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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성수선'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래서 국회 도서관에서 '성수선'이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해서 빌린 책 <밑줄 긋는 여자>

일상생활에서 묻어나는 책 이야기.
책을 보고 난 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마구 들었다.

내 일상과 내가 읽은 책의 조화.

2003년 '수선이의 도서관(www.kleinsusun.com)' 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독서일기와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그녀. 그녀의 열정과 글쓰기 능력이 부럽다.

난 비루한 블로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매일 서평을 밀렸다가 몰아 쓰는데 말이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한 달에도 몇 번씩 도망을 간다. 바쁘고 힘들 때,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정말이지 다 집어치우고 싶다. 글은 무슨 글이야? 보고서 쓰기도 바쁜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사서 고생이야? 앉아 있으면 살만 찌잖아!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골프를 배워야 회사에서 장수하지! 이런 생각들이 내 열정을 소리없이 증발시킨다.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가출한 열정이 어쨌거나 돌아는 온다는 거다. 김윤식 교수님의 특강에서, 함부르크의 헌책방에서 난 새롭게 솟구치는 열정을 느꼈다.
  사랑을 지키는 데도, 열정을 시키는 데도, 젊음을 지키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열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부딪혀야 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강의도 들어보고, 여행도 떠나고, 잊고 지내던 친구도 만나고, 옛 은사님도 찾아뵙고, 모교 캠퍼스도 걸어보고, 한번도 안 입어본 색깔 옷도 입어보고, 헤어스타일도 확 바꿔보고, 남자라면 귀도 한번 뚫어보고..... 열정도 갈구하는 자에게만 온다. - 144~5 page

열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부딪혀야 한다는 말에 200% 공감!!

  눈가에 주름이 하나둘 늘어가고 다크서클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호기심 가득 찬 눈, 장난스러운 표정, 하루에도 몇 번씩 자지러지게 웃는 명랑소녀 기질은 언제까지나 잃고 싶지 않다. 신입사원 때 제일 무서웠던 게 회사 오래 다닌 여자 선배들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전쟁이 터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과 사무적인 목소리. 회사 오래 다니면 나도 그런 무표정한 얼굴로 변할까 봐 무서웠다.
  스트레스나 건조한 실내공기보다 더 사람을 늙게 하는 건 권태다, 권태는 피부 수분뿐만 아니라 반짝거리는 눈빛도 앗아간다. 늙지 않으려면 절대 권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 254~5 page

철들지 않고 싶다. 영원히 철 없는 아이처럼 살고 싶다.
호기심 가득찬 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니고...

엇그제 친한 보좌관님이 다른 사람에게 날 소개하면서 '순수한 애'라고 이야기 하는 걸 우연치 않게 들었다.
'순수한 애?' 일하며 네가지 피는 모습도 많이 보신 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순수'하다고 평가해 주신 것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좋았다. 서른이 넘어서도 '순수'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간혹 '해맑다'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해맑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 그리고 권태.
반짝거리는 눈빛을 잃고 싶지 않은데, 타인에 의해 바뀌는 내 모습이 싫다.

누군가를 싫어하면서, 싫어하는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 싫다.
그래서 해맑음과 순수함이 사라지는게 싫다. 휴...

  제발 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줄기차게 잡생각들이 밀려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제대로 쉴 줄을 모르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말로는 매일 쉬고 싶다, 며칠만이라도 핸드폰이랑 노트북 없는 데서 푹 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중략)...
  나는 항상 '생산적인'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더러 피곤에 지쳐 주말 내내 잠을 자면 '아~~ 잘 쉬었다!'하며 개운해하는 대신 일요일 밤에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중략)...
  주말에는 근사한 데이트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책이라도 한 권 읽어야 하고, 생일에는 멋진 파티를 해서 기억에 남는 날을 만들어야 하고, 어버이날에는 감동적인 이벤트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고, 여름휴가에는 어떻게 하면 잘 놀았다는 말을 들을까 몇 달 전부터 고민하고...... 쉬는 것도 일처럼 준비하고 계획했다. 그러니 항상 마음이 분주할수 밖에! '잘살아보세!' 하는 새마을운동 노래처럼 난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된다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찔 했다. 너무 많은 계획과 그만큼의 후회로부터 어느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중략)...
  <모모>를 읽으면서 시간에 쫓겨 어쩔 줄 몰라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됐다.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쫓기며 사는 걸까?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밑줄 긋는 여자>를 보며, 수선씨와 내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것... 일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그리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까지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지금도 난 생산적인 일(?)을 위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목요일에 퇴근하며 들고 온 책 5권.
그 중에 읽은 것은 단 한권. 나머지 4권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생일엔 멋진 파티를 여러번 해야 직성이 풀리고, 어버이날엔 부모님께 무언가를 꼭 해드려야 직성이 풀리며, 여름휴가엔 어디든 떠났다 와야 하고, 심지어 평일에 휴가를 얻음 무조건 전시 한편은 꼭 봐야 하는...

평일에 휴가를 얻음. 시간단위로 계획해서 평일에 하고팠던 일들을 우르르 몰아서 해치우는 모습.
정말이지... 쉬는 것도 일처럼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 이게 맞는건가?

이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바뀌네~
나도 <모모> 좀 읽어봐야겠다. 그럼 조금은 여유를 되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