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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의자놀이(공지영)

by 하트입술 2013. 2. 3.

의자놀이작가공지영의첫르포르타주쌍용자동차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공지영 (휴머니스트,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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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에 대한 공지영의 르포 <의자놀이>
2012년 마자막 책으로 <의자놀이>를 읽었다.
침대에 기대 2시간 만에 읽어버린 책. 읽고 나서 힘들었던 책. <의자놀이>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의 정리해고 발표와 뒤이은 77일간의 옥쇄파업. 파업은 인간사냥과도 같은 경찰의 진압으로 끝나고, 어제까지 함께 울고 웃으며 일했던 동료들은 오늘, 의자에서 쫓겨난 자와 의자를 잡은 자 두 편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쫒겨난 자도 남은 자도 살았으되 죽은 자일 뿐 웃는자는 결국 1%의 그들이었다. 이제 전쟁 같은 의자놀이는 끝났지만, 쫓겨난 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22명의 연이은 죽음, 그들은 왜 유서 한 장 없이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쌍용차 해고자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지가지 병리를 연구하면서 인간의 이상행동에 이골이 났을법하지만 정혜신 박사의 눈에 눈물이 설핏 고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거에요. 보통 사람은 죽음과 삶의 경계가 아주 뚜렷해 조금이라도 위험한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삶의 끈을 놓았다.'라는 상태인 거죠. 삶의 끈이 열 가닥쯤 있다면, 이들은 그중 많은 끈이 이미 끊어져 있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왜요? 해고당한 사람들이 그들뿐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대체 그들은 그렇게 죽어요?"
  내가 물었다. 정혜신 박사는 약간 의외라는 듯 나에게 무슨 말인가 할 듯하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38 page


문재인 후보자의 지지연설 중 쌍용차 해고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던 정혜신 박사.
그녀가 했던 말들이 <의자놀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왜 죽어나가는지... 그들이 왜 힘들어 하는지... 삶을 놓아버린 사람들.

  이명박 정권 들어 내가 느끼는 극심한 피로감은, 그들은 약자에게 조금이라도 약점이 보이면 가차 없이 팬다는 것이다. 곤죽이 될 때까지. 그것도 공개적으로 팬다는 것이다. 나는 몹시 피곤하다. 
  우리는 폭력 하면 강경대, 박종철의 죽음을 몰고 온 경찰 폭력, 용산 참사 진압 과정에서의 폭력만을 연상한다. 이는 당연히 물리적 폭력이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자살은 우리의 국가와 자본에 의해 작동하는 독특한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구조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 실제 잔인한 파업 진압 과정에서의 상흔과 트라우마, 피를 말리는 생계 고통, 마치 블랙리스트처럼 따라다니며 취업을 방해하는 낙인, 정부와 회사의 압박과 무대응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과 좌절, 분노로 수많은 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기 떄문에 무심코 지나가고, 그 폭력에 신음하면서 보내는 구호 요청의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조희연, <한겨레>, 2012년 4월 16일자 
  조희연 교수의 말은 어제도 오늘도 적용된다, 즉 약자들은 이제 물리적 폭력이 아니어도 죽어가고 있다. 절망과 빈곤으로 천천히 말라서 말이다. 
  가장의 고통은 곧 가족의 고통이다. 가족대책위원회는 남편들의 파업 동안 그보다 더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대게 어린아이들의 엄마이고 대개는 직업이 없던 이 주부들은 평생 처음 보는 공권력의 히ㅗㅇ포 앞에서 깊디깊은 상처를 받았다. 노동자들이었던 남자들도 그렇지만 이들은 특히 대기업의 안정된 노동자의 아내로서 보수적인 평택지역의 두터운 중류층을 이루고 있었다. 짐작컨데 이들은 그 이전에도 보수다엥 투표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글너데 하루아침에 남편이 쫒겨나고 당장 아파트 관리비를 낼 돈이 없는 충격에 고통받고 경찰의 폭력을 당하고 언론에 빨갱이로 몰리고, 그리고 폭행당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어린 아들딸이 보는 앞에서. - 151~2 page

쌍용차 해고자는 MB 정부가 만든 것이다. 
"약자에게 조금이라도 약점이 보이면 가차 없이 팬다는 것이다. 곤죽이 될 때까지. 그것도 공개적으로 팬다는 것" MB정부의 실체.

언론장악 덕에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쌍용차사태가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도, 조중동에 보도된 것을 살펴보면 해고자들의 문제 보다는 파업 그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범법행위로 몰아가며 말이다.

그들이 왜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파업을 하니 나쁘다는 식의 기사들...

오죽하면 공지영이 <의자놀이>를 썼을까...
그래도 그녀 덕에 사람들이 쌍용차 사태에 대하여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