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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by 하트입술 2012. 12. 24.

노동의배신긍정의배신바버라에런라이크의워킹푸어생존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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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 중 하나 <노동의 배신>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트가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웨이트리스, 메인주 가정집 청소를 대행해주는 더 메이즈의 직원과 노인요양원 접시닦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월마트 직원을 경험하며 그 내용을 담은 책.

직접 경험하고 쓴 글을 너무나 좋아하는 지라, 이 책은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4천원 인생>은 기자들이 각 영역의 직업을 1~2개월 체험하고 쓴 글이라면...

<노동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아예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을 나타낸 글이다.

사는 공간도 이동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집과 일자리를 찾는 과정. 그리고 일자리를 찾은 후 일자리에서 벌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

이런 책을 보면... 나도 다양한 경험을 한 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도망자나 피난민 말고 나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까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일상을 지우고, 이메일과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메사지들과 작별하고, 지난 시간과 현재를 연결하는 물건이라곤 운전면허증과 사회 보장 카드 정도만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신나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뉴잉글랜드 지방의 얼음처럼 찬 대서양 물에 뛰어들어 높은 파도 산을 지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천천히 힘 안들이고 수영할 수 있듯이 이번 일도 점점 나아질 거라고.
그럼에도 포클랜드에서 처음 지내는 며칠 동안은 머릿속에 내가 원래 속한 사회 계급 특유의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질 안았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중류층 전문직 종사자들은 어떤 변수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미래를 향해 섣부르게 달려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우거나 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의 목록 정도는 미리 작성해 놓아야 안심이 된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에 대처할 방법을 미리 생각하고, 우리의 인생도 어떤 의미에서는 한번 살아본 것처럼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새로운 생활을 어떤 순서로 시작해야 하는 걸까? - 83 page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에런라이크.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우거나 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의 목록 정도는 미리 작성해 놓아야 안심이 된다." 이러한 삶을 살다가 계획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자제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일이 생겼다. 100만 달러 짜리 콘도에 갔는데, 주인은 나를 부부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샤워실 때문에 아주 속상하다고 했다. 샤워 부스의 대리석 벽에서 '피가 나듯' 물이 새 놋쇠로 만든 수도꼭지 손잡이에 떨어져 녹이 슬고 있다면서 대리석 사이의 이음새를 특별히 박박 밀어서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리시아산 카페트를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 129

청소도우미를 경험한 그녀... 무리한 부탁을 듣고 나서 그녀가 한 생각...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리시아산 카페트를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왠지 뜨끔뜨끔한.

마침내 그가 도와주기로 마음을 정한 듯 내게 또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네번의 시도 끝에 글로리아라는 여성의 친절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일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비데포드에 있는 식품 보관소로 가라고 했다. 어떻게 배고픈 사람들이 하루 종일 여유롭게 지역 센터와 자선 단체들을 찾아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국 글로리아는 나를 또 다른 자원봉사 단체의 캐런에게 연결시켜 주었다. 그런데 캐런은 내가 사는 카운티가 자기네 관할이 아니란다. 아주 천천히, 신용 카드 청구서에 관해 문의할 때처럼 아주 사무적인 어조로 다시 한번 내가 시간적 지리적으로 얼마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내가 하루에 적어도 8시간씩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있다는 것과 지금 현재 그녀의 관할 지역에서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됐다! 캐런이 승복했다. 내게 현금을 줄 수는 없지만 자기가 전화를 해서 내가 사우스 포틀랜드 숍앤세이브에서 식료품 바우처를 받도록 해 주겠다고 한다. ...(중략)...
차를 타고 숍앤세이브로 가서 고객 서비스 창구에서 바우처를 받아 들고 쇼핑을 하면서 확실하게 절약했다. 우유 1리터, 시리얼 한 상자, 다진 고기 한 상자, 그리고 강낭콩 통조림 한개를 골라 담았다. 고기와 강낭콩으로 칠리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 계산대의 여직원은 내가 삶은 콩 대신에 강낭콩 통조림을 고른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특별히 뭘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나를 못 본 척했다. 결론: 통화하고 운전하는데 70분을 투자해서 7.02달러어치의 식료품을 벌었고 전화요금으로 2.80달러가 들었다. 따라서 시간당 3.63달러의 임금을 받은 셈이었다. 144~146


복지제도를 이용하려는데 나타나는 비효율. 수급자 위주가 아닌 제공자 위주의 시스템과 물품.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굽신 거려야 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인가?
그럼에도 책 속에 나타난 미국의 숍앤세이브는 우리나라 푸드마켓 보단 나은 것 같다. 여러가지 다양한 것들을 주니 말이지...

새벽 4시쯤 되었을 때 문득 내가 겁쟁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여성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과 어떤 이유에서든지 잠시 가난한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이중 자물쇠와 경보 장치와 남편과 개가 있는 집에 사는 여성들보다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거나 적어도 한 번쯤은 어디서 들어봤을 얘기였지만 이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 208~9 page

가난한 지역일수록 성폭력 발생 건수가 많다. 이러저러한 안전장치의 부족 때문에...
가난한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TV는 부자동네에 더 많이 세워지고 있다.
왜냐? 부자동네가 재정자립도가 높아 CCTV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니깐...

월마트의 한 동료도 내게 비록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 것'은 피하고, 적어도 관리자들에게 내 능력의 한도를 노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충고했다.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할수 있다는 걸 눈치채면 그만큼 더 부려먹으려고 하거든요." 그들이 게을러서 이런 조언을 해 준 것이 아니다. 다만 목숨 걸고 일해 봤자 돌아오는 보상이 아주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을 뿐이다. 오늘 기운을 얼마나 쓰고 내일을 위해 얼마나 남겨 둘지를 계산하면서 일하는 것이다. - 263 page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채면 더 부려먹으려 하는 것은 비단 월마트뿐은 아닌 듯.
국회에서도 그런걸 뭐... ㅠ.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왜 더 쏙쏙 뽑아 먹으려 하는 걸까?
그게 자본주의?

가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빈곤을 일반적으로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빈곤 떄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심각성은 더욱 짐작하기 어렵다. 점심을 과자나 핫도그 빵으로 때웠다가 근무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현기증이나 기절할 지경이 되는 것을, 차가 '집'이 되기도 하는 상황을.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도 이를 악물고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병가수당도 의료보험도 없으니 오늘 하루 일을 못하면 당장 내일 식료품을 살 돈조차 없는 절박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들은 지속할 수 있는 삶. 심지어는 만성적 결핍에 시달리는 삶의 일부라고도 할 수 없으며 낮은 수준의 처벌을 끊임없이 받는 것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어떻게 정한다 할지라도 이들이 처한 상황은 응급상황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겪는 빈곤을 비상사태로 보아야 한다. - 287~8 page

모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구절. 그래서 더욱 불편했던...
내가 아무리 빈곤 관련 책을 읽고, 정책을 분석해도 그들이 겪는 것을 온전히 알 수 는 없다는 것.
최저생계비 체험을 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란 것...

그들의 절박함을 보다 잘 이해해야,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함이 미안하고 안타깝고.
어떻게 해야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아우...

<노동의 배신>을 읽고 난 직후에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책에 감동받았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랬던 책인데도 서평을 4개월이 지나 쓰게 되니.. 그 흥분이 다 사라져버렸구나.

서평은 바로바로 써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