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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광복절 오후.
동네 북카페에서 혼자 유유자적 시간 보내는 중~
항상 휴일에는 무언가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을 느끼곤 한다.
점심을 먹고, 침대에서 책을 보다가... 이대로 침대에서 책을 보면 또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아, 노트북 들고 온 <거북이 달린다>
아메리카노 한잔 시키고, 서가에서 고른 책 <오후 네시>
아멜리 노통이라는 이름을 보곤 바로 뽑아서 1시간 30분 정도 걸쳐서 다 읽었다.
<살인자의 건강법> 보단 더 술술 잘 읽힌 <오후 네시>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무슨 일이냐고?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베르나르댕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상하게 느꼈어야 할 그런 일을 나는 아직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 9 page
소설의 서두.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공감하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정년 퇴임 후, 도시를 떠나 전원에 꿈꾸던 <우리집>에 살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 이다.
고즈넉한 생활을 꿈꾼 노부부(에밀, 쥘리에트) 매일 4시면 그 집을 방문해 고즈넉한 노부부의 삶을 깨트리는 고집불통의 이웃집 의사(베르나르댕).
그를 집에 못오게 하려 이런 저런 방법을 강구해 보다가, 와이프(베르나르댕 부인)도 같이 오라고 했고...
그가 함께 온 와이프는 심각한 고도비만으로 어떻게 저런 여자와 살까? 하는 수준.
결국 4시 전에 산책을 나가보기도 하고, 어려운 대화를 유도해 보기도 하고, 계속 질문을 던져 보고, 뷰인과 함께 오라고 해도 매일 4시에 방문하여 6시에 돌아가는 베르나르댕. 결국 그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밀쳐버린 에밀. 그가 4시에 오지 않을 때 에밀의 모습.
다음날 오후 4시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 다음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시 59분이 되면 내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온갖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숨쉬기가 힘들고 식은땀이 났다. 영락없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닌가.
4시 정각이 되면 나는 너무나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4시 1분이 되자 승리감에 찬 전율이 내 온몸을 관통하곤 했다.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억제해야 할 정도였다.
내가 <하곤 했다>는 표현을 거듭해서 쓴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조건 반사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시간대에는 훨씬 빨리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런 지긋지긋한 조바심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베르나르댕 증후군은 후유증을 남겨 놓았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지독한 열패감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이었으니까. - 125 page
베르나르댕의 와이프를 본 후 그의 삶에
이후 의사가 자동차에서 배기가스 질식으로 자살하려는 것을 막은 남자와 자살을 막은 후 그 집에 가보니 의사의 삶이 너무나 무료하고 사는 낙이 전혀 없을 것 같아. 결국 그를 베게로 죽이고 마는.
그를 질식사 시키기 전날 낮에 베르나르댕에게 에밀이 한 이야기.
무엇보다도 당신이 자살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는 없어요. 당신의 삶을 좀 보세요. 그건 사는 게 아니라고요! 당신은 고통과 권태의 덩어리에 불과해요.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당신은 공허 그 자체예요. 베르나노스 이후 물론 당신은 베르나노스를 본 적도 없고, 그의 작품을 읽은 적도 없을 테죠. 당신은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어요. 당신은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과거에도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당신이 혼자라면 나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가 않아요. 당신은 스스로의 그런 운명에 대해 당신의 부인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어요. 당신 부인의 겉모습을 여자라고 할 수 없지만, 당신보다 백 배는 더 인간적입니다. 당신은 그런 그녀를 집 안에 가두어 두고, 당신의 허무를 강요하고 있어요. 그건 비열한 일이죠. 만약 누군가를 학대해야만 살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살지 않는 편이 나아요. - 176~7 page
타인이 고통과 권태의 덩어리라고 해서, 누군가 그의 삶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소설이지만, 결론이 조금은 찝찝한.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현재 내 삶은 고통과 권태의 덩어리는 아니겠지?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무언가 재미를 찾기 위에 참 아둥바둥 하며 살고 있는 듯. 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