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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by 하트입술 2012. 7. 29.

욕망해도괜찮아나와세상을바꾸는유쾌한탈선프로젝트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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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제목만 보고 반해버린 책 <욕망해도 괜찮아>
살까말까 하다가 국회도서관에 검색하니 있어서 바로 빌려서 봤당.

김두식 교수가 본 욕망. 재미있게 읽었다.

남녀 불문하고 다들 비슷한 형편이라 어차피 연애할 상대방도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취직, 고시, 유학 준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더욱 '계'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런 극심한 경쟁을 거쳐서 겨우 결혼할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색'보다는 '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어떤 집안 출신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얼마나 장래성이 있는지, 건강한지, 품성이 안정적인지 등등을 빼놓은 배우자 선택이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계'에 속한 청년들은 이 모든 것에 외모를 더하여,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괜찮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합니다 한눈에 반했다거나, 불꽃같은 연애를 했다는 사람들도 이런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강한 끌림, 성적 매력 같은 것을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 덜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연애와 결혼은 구분된다는 가치관도 결국은 '색'에 대한 '계'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규범적인 '계'의 남자들은 좋은 직장과 안정된 가정을 지닌 사회지도자로 자리잡습니다. 원래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누린 다음에야 어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훌륭한 어른'이 됩니다. 그저 '어른 행세'하는 법만 배운 소년들이 '훌륭한 어른' 타이틀을 거머쥐는 셈이죠. 인간이 평생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볼 때, 지랄이라는 실탄을 거의 사용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겉은 멀쩡한 어른인데 마음 깊은 곳 감성의 어느 한구석은 텅 빈 소년들입니다. 갈 곳을 잃은 '색'은 마음 한구석의 더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들어갑니다. 잠복한 것일 뿐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 89~90 page


'색'을 추구하고자 하나, '계'에 속해버린 인간.
경계선에 있고프나 결국 선택의 시점이 오면 '계;를 선택하는 인간. 나 또한 그런 것 같다.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색'보다는 '계'에 속한 것들이라는 것에 공감. 또 공감.
어떤 집안 출신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얼마나 장래성이 있는지 등...

그러한 것들에 어느정도 부합이 되고난 후 '색'을 찾는 것 같다.

아무리 '색'에 끌려도 '계'가 아니라면 마음을 접고 마는...

최근 내 모습을 보면, 나 또한 '어른 행세'하는 법만 배운 '훌륭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점점 기득권층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기득권에 반발해 오던 내가 어찌 이렇게 변하게 되는건지.

'색'을 찾는... '색'을 추구하는 인간이고프다.
그런데 생각만 이렇게 하지 난 또 '계'를 바탕에 깐 후 '색'을 추구할거다... 뻔하다.

헤어질 수 있는 용기,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는 근본적으로 '혼자 서는 용기'와 연결됩니다. 애인과 헤어지지 않으려면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직장상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그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절교할 수 있는 용기 입니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슬픔과 묘미가 있습니다. - 124 page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 이 말에 공감.

'혼자 서는 용기'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기.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것이 오롯이 혼자 서는 용기인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혼자 서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성취가 자기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재벌 2세도 그 이후 기업이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자기 성과물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을 '운'이라고 말하면서도, 거기 투자했던 노력만큼은 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모든 성취도 어떤 경계선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중산층의 재산적 여유가 확보해준 시간이 공부할 기회를 주었고, 중산층문화에서 비롯된 규범의식이 매사에 '선'을 넘지 않는 제 인격을 형성했으며, 배우자나 친구를 사귀는 범위도 그 경게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들 중에 유난히 '사'자 직업이 많이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겁니다. 더 규범적인 모범생이 되는 것 말고는 딱히 '출세'의 길을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친구들도 저도 그런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곤란하겠지만, 친구 부모님들을 소득수준에 따라 한줄로 세워본다면 그 자녀인 우리 세대의 순위도 거기서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태어난 공간적 위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죠. - 193 page

'태어난 공간적 위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

3살 때 명일동으로 이사온 후 지금까지 쭈~욱 명일동에서 살고 있다.
82~3년 신축된 18개 동의 고층아파트 단지. 그 중 2~3동은 사원아파트.

아빠 회사 사람들로 득시글 했던 아파트.
아빠들끼리 친구, 엄마들끼리 친구, 우리끼리 친구 그리고 동생들끼리 친구.

그런 분위기에서 30년을 살았다.
동일한 직장을 다니는 아빠를 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슷비슷한 인간이 되었다.

상위권으로 일컬어 지는 대학에 가고, 꽤 괜찮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비슷한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대학을 들어가기 전 까진,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큰 것들이라고 느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나 정도는 누리고 살았으니까... 아니 그 중 내가 덜 누리고 산 편이니까~

그런데, 대학을 가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자신의 생활비는 자신이 벌어서 충당하는 친구...
그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친구들은 김두식 교수의 친구들 처럼, 부모들의 소득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태어난 공간적 위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큰셈.

아마. 내 친구들도, 내 친구들의 자식들도 그들의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되풀이해서 살 것 같다.

이미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부셔져 버린 것 같으니 말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 생길 수 없는 사회적 환경.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 학기에 천만원 가량의 등록금을 내야 하고...
그 등록금이 없으면, 머리가 좋아도 공부를 잘해도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 없는 요즘.

결국 이렇게 계층이 공고화 되는걸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젊은이들이 살이라는 중요한 소통수단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않게 살의 소통을 배우다보면 삶이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순결'을 지키겠다는 결심도 가치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어야겠죠. 다만 그런 선택이 타인을 감시하고 심판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만이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정신적 사랑, 육체적 사랑, 깨진 사랑, 이루어진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 그렇지 못한 사랑, 무거운 사랑, 가벼운 사랑, 뜨거운 사랑, 차가운 사랑, 그 이름이야 어떻든 사랑은 아름다운 겁니다. 살의 소통을 즐기되, 남이 어떻게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레이더를 꺼야 합니다. 남의 욕망을 엿보는 데 쏟는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내 욕망을 관찰하고 탐닉하는 모험에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개된 건강성과 은밀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몸의 문화입니다. 몸을 누르는 사회에서는 여성도, 남성도,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 233~4 page

'살 이라는 중요한 소통수단' '몸을 누르는 사회'
유교권 문화여서 그런지, 유독 우리 사회는 '살'에 예민한 것 같다.

속살이 나오면 안된다는 강박. 속살이 나온 옷을 입으면 천박하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그 속살은 결혼을 해서 남편 혹은 아내에게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들...

그 관념들이 깨지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개방적인 성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옷을 야하게 입어도 천하게 보지 않고, 개성으로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

'살의 소통을 즐기되, 남이 어떻게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레이더 끄기!!'

법률가들은 화이트칼라 중의 화이트칼라로 늘 사안에서 한발짝 떨어져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아무래도 남의 고통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년간 제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많이 뱉은 말이 있습니다. "억울한 건 분명한데, 현행 법체계하에서는 어쩔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법률가들의 형편도 비슷할 겁니다. 법을 잘 알기 때문이라 변명할 수도 있지만, 원래 올바른 법률가의 태도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없는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그런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현행 법체계하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억울함을 만드는 법체계라면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게 맞습니다. 또한 법률가들은 개별사건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서 거시적인 대책을 만드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누가 인터넷에서 북한을 찬양고무했다고 억울하게 붙잡혀가면 표현의 자유 침해임을 우장해 무죄를 이끌어 낼 줄은 알지만, 보편적 복지,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같은 국가적 사안에 정확한 의견을 표명하고 여론을 만들 줄을 잘 모릅니다. - 262 page

국회에서 민원전화를 받다가 내가 가장 많이 헀던 말.
'억울한 건 분명한데, 현행 법체계하에서는 어쩔수가 없다' '법안이 지금 발의가 되어 있으니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지만.. 현행 법 체계하에서는 어쩔 수 없고, 그럴 경우 그 법을 바꿔야 하는데~
쟁점이 심한 법률일 수록 개정이 어려운...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한 부양의무자가 그러한 경우.

20년간 떨어져서 산 자식 혹은 부모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 내용을 담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해도 그 발의안은 보건복지부의 반대로 통과가 되지 않고....

나 그리고 우리 의원님은 '억울함을 만드는 법체계라면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일까?
그렇게 활동하고 일해야 하는데... 19대 국회에서 그리 되기를.

이 책을 손에 잡은 분들은 보나마나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일 겁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모범생이 많고 아무래도 '색'보다는 '계'쪽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지요. 자기가 바른 생활을 하는 만큼 남에게 돌을 던지기도 쉽습니다. 대신에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접하고 경계선을 넓히기도 쉽죠. 서둘러 돌을 던지기 보다는 경계선을 넓히는 쪽이 자기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훨씬 좋습니다. - 291 page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모범생이 많고 아무래도 '색'보다는 '계'쪽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지요.

음. 난 모범생은 아닌데...
'색'과 '계'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을 넓히는 것은 매우매우매우 필요한 것 같다.
'계'보다는 '색'을 지향하는 삶!!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 - 301 page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이 그저 좋았다. 친구들의 생각이 나와 같다 다르다 이런 판단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생각이 같은 친구들이 늘어났다.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같은 친구, 선배, 후배들... 그렇게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비단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동지들.

오랜 친구들도 좋지만, 사회생활 이후 생긴 동지들도 참 좋다.
오히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오랜 친구들보다 사회생활 후 알게 된 동지들이 더 비슷해서 말이 더 잘 통하기도 하고...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그 사람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나 또한 그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기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