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선이 결혼식을 마치고, 지경이 아들인 건율이 돌잔치에 갔다가 들렀던 교보문고.
"어떤 책이 깔려있나, 어떤 책이 재미있어 보이나" 기웃기웃하다 발견한 책 <어떤 날 그녀들이>
책 표지가 나름 자극적이라, 누가 쓴거야? 하고 들춰보니 임경선이란 이름이 콕!
연애칼럼리스트로 유명한 그녀가 쓴 소설이기에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국회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각각의 단편소설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것!
아주 가볍지도 아주 무겁지도 않은, 일상에 일어날법한 연애 이야기, 내 또래 여자들의 삶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어 내려갔다. ^^
그리고 읽으며 몇몇 부분을 갈무리~!
"잘 쉬고 있는 거지? 근데 최 차장 없어서 그런지 몇 번 사고가 터졌어...... 쉬는데 미안하지만...... 아니다, 내가 환자한테 무슨 소리냐. 아니 음, 최 차장 컨디션 괜찮으면 아무 때나 좋으니까 이번주에 잠깐 와서 자료 좀 한번 봐주라. 아니면 애들한테 이메일로 보내라고 할까? 집에서 봐도 상관없구. 그리고 혹시 최 차장이 원하면 휴직 기간 단축해도 되니까 편한 대로 해."
내일 당장 나오라는 소리였다. 바로 이럴 때 '노'라고 말해야 한다고 아까 낮에 만났던 의사는 말했다. 지수에겐 지금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웬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헤롱대던 지수의 뇌가 번쩍했다. 축 쳐저 있던 척추가 곧게 펴졌고 목소리도 낭랑해졌다.
물을 가지러 갔던 정원이 돌아오면서 물었다.
"뭐야, 회사에서 전화 왔어? 뭐야, 지네들이 쉬라고 해놓고......"
정원의 하얗고 예쁜 얼굴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이 여자는 회사가 비인간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다.
"나, 잠깐 누울게."
지수는 몸을 소파에 뉘였다. 룸사롱 홀 바닥에서 느낀 것처럼 갑자기 몸이 지하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피로감이 엄습했다. 몸은 웅크리고 누워 있는데 지수의 머리속은 팽팽 돌아갔다. 이미 다음날 벌어질 일과가 초고속 화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정원은 지수의 표정을 다 이해했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뭐, 정 안되면 여행은 다음에 너 짬날 때 언제라도 갈 수 있는거고...... 너 괜히 부담 갖지마."
워크홀릭 친구를 둔 게 다 자기탓이라는 듯 정원은 지수를 살짝 안으며 어깨를 토닥거렸다. 힘없는 정원의 목소리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근데 이 기분은 뭘까. 지수는 궁금했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흥분된 상황이어서 그런가? -144~5 page
쉬는날 회사에서 일과 관련된 전화를 하고... 그 전화에 헤롱대던 뇌가 번쩍! 머리속이 팽팽 돌아가며, 다음날 벌어질 일과가 초고속 화면으로 돌아가능~
이런 기분... 종종 느끼곤 했는데~
일에 대한 상상을 하며 흥분하기.
법안을 검토하며, 예산을 검토하며, 국감 질의서를 쓰며 느꼈던 흥분감.
그 흥분감이 좋아서 국회라는 공간에 있는건데... 그런 흥분감을 타인도 느낀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달까?
근데 최근엔 그런 흥분감을 별로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속상하다;;
내가 일을 덜해서 그런가?
서른여섯쯤 되면 퍼뜩 갖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어떻게 들릴진 모르지만 물질적으로 나는 부족한 게 없다. 그나저나 무슨 선물을 준비해을까. 조금 여유 공간이 있는 백을 준비하는 편이 나을까. - 150 page
나는 아직 서른여섯이 아닌데, 서른하나 밖에 안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은게 별로 없다.
얼마전 서른한번째 생일 즈음, 친구들과 지인들이 "뭐 갖고 싶어?"라고 물을 때 나는 "갖고 싶은거 없어, 다 갖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무언가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게 좋은걸까? 있는게 좋은걸까?
객관적으로 날 바라봤을 때, 물질적으로 부족한게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가방이나 옷...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하여 과도하게 욕심내지 않고 살고 있고~
다른 부분들도~
나이가 한살한살 들수록. 물건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듯.
근데 물건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대신 다른 부분에 대한 욕구가 생긴 것 같지도 않다.
점점 무기력해지는건가?
"뭐야, 그거. 너 무슨 원형 공포증이라도 있는 거니?"
"음...... 그게 좀 각이 너무 없는 거야, 남자가. 각이 없다구, 글쎄."
친구들은 실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까다로운 수현의 잣대를 한없이 비웃었다. 우진은 당시 가장 비싸다는 오페라의 브이아이피석 티켓을 끊어놓고, 테이블이 하나만 있는 예약제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프랑스 코스요리를 사주기도 했다. 난생 처음 남자로부터 받아보는 거창한 저녁과 일본산 명품 진주 목걸이에 수현은 기쁘다기보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탁자 아래서 다리를 떨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수현의 집은 의정부에 가까웠고 우진의 집은 산본이었다. 그럼에도 데이트 후 수현을 자시의 은색 아우디로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음악도 수현이 좋아하는 최신 팝 발라드만 노래만 모아서 들려주었다.
그렇게 잘해주고 잘 이해해주는데도 수현의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수현은 진심으로 자신이 우진에게 푹 빠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재연의 로맨틱한 마음과 호정의 냉철한 시선이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석 달 간의 고심 끝에 수현은 자신의 느낌을 따르기로 했다. 우진을 석 달 이상 만나면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저 동글동글함에 짓눌려서 납작한 반죽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잖아. 내가 아무리 마음을 잡으려고 해도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쩔 거야. 수현은 타협하지 말자는 결정에 도달한 자신이 조금 기특하기까지 했다.
'당신이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가 공식적인 이별 메시지였다. 이런 진부한 멘트를 날리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우진에게 미안했다. 자신의 허접한 통보를 저토록 객관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그것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받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불공평해 보였다. - 198~9 page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소개팅을 꽤나 많이 한 것 같다. 30번 이상?
그 중 연애를 했던 사람이 4~5명 정도니... 푸핫! 그럼 승률이 꽤 되는건가? 여하간...
이 부분을 읽고 나의 소개팅과 연애를 되집어 봤다.
먼 거리에서 너무나 당연한 듯이 데릴러 오고, 데려다 주던 사람들...
난 왜 항상 거리가 먼 사람들과 연애를 하여 그들을 괴롭게 한건지;;;
(딸 뿐만 아니라 아들도 가진 우리 엄마는 항상 내 남자친구들을 안쓰러워 했다...ㅋ)
잠을 쪼개가며 공부하던 대학원생 시절, 안산에서 와서 집 앞에 꽃다발만 놓고 다시 안산으로 되돌아갔던 사람. '박정현'을 좋아한다고 하니, 박정현의 모든 앨범을 다운받아서 CD로 구워준 사람.
무언가 하고 싶고, 갖고 싶고, 먹고 싶다고 하면 그 모든 요구를 단숨에 들어줬던 사람들.
난 그들과 왜 헤어진걸까?
헤어질 땐 각기 다른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연애 혹은 데이트를 하던 사람들 중
잘해주고 잘 이해해주는데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좋은 조건에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결국 그에겐 '당신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는 멘트를 날릴 수 밖에 없었다.
최근의 연애.
수현과 같이 석달 즈음 만났고...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 너무나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난 또 다른 사랑을 찾고 있다.
항상 마지막이길 바라며 시작하는 연애.
언제 마지막 연애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