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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계동리

by 하트입술 2010. 9. 21.
충남 서천. 제 고향이자 본적지 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빠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저희 평해 구(丘)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자, 지금도 할머니와 많은 먼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서천. 태어났을 때 부터 지금까지 명절과 방학 때까지 합쳐 일년에 최소 3~4번 이상 내려갔던 할아버지 댁이 있는 서천. 태어나서 자란 곳은 아니지만, 마음의 고향이자 진짜 고향인 서천.

추석에 서천을 가지 못해서 그런지, 혹은 지금 막 늦은 추석 선물로 은사님과 지인들에게 서천김을 선물해서 그런지(결재~) 갑자기 서천과 관련된 추억이 마구마구 떠오릅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댁에서의 첫 기억.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은 겨우 걸을 정도의 나이에 할아버지 댁을 갔던 기억이 가물가물 납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나무로 만든 대문을 지나 마당에서 바라본 한옥은 무서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나 까만 대청마루와 마루 끝에 있던 나무문 달린 벽장을 보고 마구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도 꽤나 오랫동안 부엌쪽 대청마루 끝에 위치한 벽장을 무서워 하면서,
벽장문을 절대 열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벽장을 열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댁을 가는 길에 탔던 장항선 무궁화호 기차 속에서의 기억 또한 생생합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저와 제 동생...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 할아버지 댁을 가기 위해서는 꼭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저희집이 차를 산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니깐 그 전까진 거의 명절 때마다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을 간 셈이죠.
기차에서 항상 사먹었던 음식이 있습니다. "껍질 벗겨 먹는 소세지" 평소엔 부모님이 잘 사주시지 않던 음식인데, 유일한 예외가 시골 가는 길 기차 안이었습니다. 당시 저와 제 동생은 그 소세지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서천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도 같습니다. 정말 단순하죠. 소세지 하나 사준다고, 그 사람 바글거리는 기차 타는 걸 기디렸으니... ^^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부터는 서천 이곳저곳에 참 많은 추억들이 남아있습니다.

우선 할아버지 댁. 신식 한옥인 할아버지 댁에는 하고 놀 꺼리가 참 많았습니다.
추석에는 뒷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 따고, 앞마당에 있는 우물 들여다 보다가 물건도 빠트려 보고(우물물을 안 쓴지는 오래), 공식적으로 허용된 불장난! 사랑방 아궁이에 계속 불 떼다 온돌이 너무 뜨거워 사람 못 들어갈 지경으로 만들어 놔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할아버지 댁 바로 옆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 꺾어다가 그걸로 서로 때리고 놀고~
년년생 사촌들 6명이 동시에 할아버지 댁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참 시끄럽게 그리고 재미나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당시 저희가 가장 즐겼던 놀이 중 하나는 바로... 한옥 창호지 뚫기 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걸 그렇게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온 집안의 문이란 문에는 다 구멍을 내고~ 구멍 난 곳으로 밖을 쳐다보며 꺄르르 웃던 기억. 왜 그 추운 설날에도 창호지 문 뚫어 놓고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문들에 다 구멍 뚫어 놓으면, 할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으시며 다시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바르곤 하셨습니다. 단 한번도 혼내신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했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설날이면, 어디선가 짚더미를 가지고 와서 널뛰기도 만들어 주셨습니다(그 널판지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 그리고 매년 그 널판지를 어디에 보관하셨다가 저희에게 내 주셨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인). 길다란 나무 널판지. 그 가운데 동그란 짚더미를 넣으면 바로 널뛰기로 변신!! 설날이라고 사촌들 모두 한복 입고 신나게 널뛰던 기억. 그리고 눈이 오면 비료포대 하나 들고 선산에서 신나게 눈썰매 타던 기억~ 겨울에 논두렁 얼었다고 좋다고 얼음 깨고 돌아다니다가 덜 언 논두렁에 발 빠트려 털부츠 진흙투성이 만들고, 세탁 후 덜 마른 부츠 대신 슬리퍼 신고 서울 갔던 기억.

그리고 선산에서 밤을 땄던 기억 엄밀히 말하면 땄다기보단, 떨어진 밤송이에서 밤을 찾아 내는 일을 한 거지만... 유독 밤이 많았던 선산. 사촌들과 누가 더 밤을 많이 따나 내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밤 따다가 메뚜기, 개구리 이런거 잡으면, 잡은 메뚜기랑 개구리 모았다가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사촌들 모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서울 깍쟁이들인데... 서천만 가면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온 동네를 싸집고 돌아다녔으니~ 이 글을 쓰며 그때 생각을 하니, 급 웃음이 나네요.

여름엔 앞마당에 평상 놓고 거기서 수박을 먹고, 또 캠핑하고 싶다며, 멀쩡한 방 놓고 앞 마당에 텐트 쳐놓고 그 안에서 자고~ 온 동네 봉숭아 따다가 백반 넣어서 짓이기고, 손톱 위에 놓고 비닐로 감싼 후 실로 동여 매고 자고 일어났는데, 잠버릇이 안 좋아 손가락을 감쌌던 비닐이 다 떨어져서 이불에 온통 봉숭아 물이 들어 혼났던 기억.

할아버지 댁 뒷쪽에서 캠프화이어 한다며 우리끼리 불켜놓고 신나게 불장난 하다가 근처를 꽤나 많이 태워 먹어 혼나고, 할아버지 댁 다락에서 육각형 큰 성냥갑에 있는 성냥을 촛불에 계속 집어 넣는 것을(불이 성냥에 닿으면 치칙~하면서 불꽃이 확 커지는게 너무 신기해서, 6남매가 계속 촛불에 성냥을 가져다 대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는...) 삼촌한데 걸려서 다락에 불낼일 있냐며 크게 혼났던 기억.

온 식구들이 여름마다 시골에 모여 조개캐러 가면, 비료포대로 한포대 가득 조캐 캐왔던 기억. 그리고 조개 캐러 다녀오면 서로 먼저 씻으려고 사촌들끼리 몸 싸움 하며 장난치던 기억~

그리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괜히 서천읍내 가서 얼쩡거리면서 돌아다니고, 버스타고 장항가서 배타고 군산갔다 온 기억. 그 땐 그렇게 장항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단지 배를 타기 위해서 말이죠. 장항에 가서 배타고 군산갔다가, 별거 하지도 않고 다시 군산에서 장향으로 배타고 와서 버스타고 할아버지댁으로 되돌아 오기... 사실 할아버지댁 앞에서 군산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는데 도대체 그땐 왜 그렇게 배를 타는걸 좋아했는지~ 좋지도 않은 배였는데~

그리고.. 어른들 몰래 돌챙(버스 정류소 있는 마을 앞 쪽을 돌챙이라고 합니다. 말의 어원은 전혀 모르겠네요~)가서 과자사와서 사랑방에서 먹다가 걸려서 혼났던 기억. 할머니가 저희들 과자 먹는걸 너무 싫어하셔서(과자 먹느라 밥 안 먹는다고)... 어릴 적 부터 지금까지 과자 같은 것은 사다가 놓고 몰래 먹습니다. 나이 서른에도 말이죠. ^^;;

사촌들이 대학생이 된 후에는 한산 소곡주 댓병 하나 가져다가 우리끼리 홀짝거리다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던 기억... 소곡주 보고 앉은뱅이 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왜 그런지 정말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아... 서천엔 정말 많은 추억들이 있는데, 지금 생각 나는 건 이정도네요.

사실 전, 명절에 시골가는 걸 정말 죽도록 싫어했었습니다. 매년 온몸으로 느낀 귀향전쟁 그리고 귀성전쟁. 충남 서천에서 서울까지 8시간은 기본에, 오래 걸리면 14시간 까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는 차가 너무 막혀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를 갔는데 지각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시골이 싫었다기 보단 시골을 오가는 과정이 싫었던 거죠. 가만히 차에 있어도 너무 힘드니깐...

명절에 서천을 가기 위해 오전 수업만 듣고 조퇴해서 시골을 가기도 했었는데~ 그 땐 시골 안가는 친구들이 정말 많이 부러웠었는데, 일 하느라 이젠 일년에 겨우 구정에나 한번 서천을 찾게 되니, 시간이 나면 꼭 가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큰 후엔 길거리 다니다가 서천 홍보물만 봐도 매우 반가워 하는 제 모습을 보면... 전 서천 촌년 맞나봅니다. 예전에 교대역을 지나는데 교대역에 서천 홍보글이 붙어있었습니다. 반가움에 한참 서서 그걸 쳐다보고... 상암역에 서천 홍보 부스 있는 걸 보고 사진을 찍고, 그런걸 보니 서천 촌년 맞습니다. 저는... ^^

결국 추석 선물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선정한 건, 서천김~ 설마 이게 사람들이 욕하는 바로 그런 지역색인가요? ^^

비록 서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고향은 서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