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
국회 도서관에서 '한강'으로 검색을 해서 빌린 책 <여수의 사랑> 그런데 이 책은 그녀의 장편소설에 비해 임팩트가 적었다.
그렇게 사년 가까이 부은 적금이 만료되어가고 있던 초여름의 토요일 오후, 나는 직장 근처의 떠들썩한 유흥가 골목을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객지 생활의 외로움 때무남ㄴ은 아니었다. 내가 서울에서 보낸 기간은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몇몇 동기들의 대학시절이었고, 다른 몇몇 동기들은 진작 시집을 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다고들 했다. 그 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나 하고 되집어 보니 내 마음은 우울했다. 업무가 지루한 만큼 퇴근까지의 하루는 길었으나, 그 비슷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되어 흘러가는 큰 단위의 시간들은 짧기만 했다. 일주일도, 한 달도, 일 년도 어느날 뒤 돌아보면 후딱 지나가버리고 없었다. 나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날 오후 나는 과연 계획대로 대학에 가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풀이 꺾여 있었다. 누구도 격려해주지 않는 초라한 구석 자리에서 무엇을 바라고 혼자 버텨왔나 하는 부질없는 후회마저 치밀었다. 그 약한 마음을 달래보려려고 어둠이 채 내려앉기도 전에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는 상점들과 술집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같은 처지의 인숙언니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어둠의 사육제 88~89page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혼자 일을 해서 대학을 갈 돈을 벌고 있던 여자.
여자는 비슷한 처지의 인숙언니를 만나서 반지하방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다 인숙언니는 전세금을 빼서 도망을 갔다. 갑자기 갈곳이 없어진 여자
결국 여자는 이모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모집에서 베란다를 방 삼아 지냈는데, 그런 여자를 지켜보고 있던 앞 동의 남자가 있었다. 차사고로 임신한 와이프를 죽인 가해자를 괴롭히기 위해 같은동으로 이사를 와서 가해자의 가족을 지켜보던 남자. 그 남자가 베란다에 사는 여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자신의 집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으나, 여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있을법한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지만 위 구절을 보며 울렁거림을 느낀 이유는 무얼까?
"그 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나 하고 되집어 보니 내 마음은 우울했다. 업무가 지루한 만큼 퇴근까지의 하루는 길었으나, 그 비슷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되어 흘러가는 큰 단위의 시간들은 짧기만 했다. 일주일도, 한 달도, 일 년도 어느날 뒤 돌아보면 후딱 지나가버리고 없었다. 나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이 구절 때문일까?
반복되는 일상. 빠르게 흐르는 시간. 달라지지 않은 삶.
이런 구절을 보며 울렁이는 것 보면 이 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