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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전(6월) 정이현 작가가 국회에 특강을 왔다 갔다. 물론 난 만사 다 제쳐두고 특강에 참석을 했다. 조찬으로 열린 특강이 있었던 날 오후 6시까지 기말페이퍼를 제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쓰다 만 기말페이퍼를 팽개쳐 두고 간 정이현 작가의 특강.
정이현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생이었던 2003년 이었다. '내 이야기' 같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고 난 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고등학교 때 신경숙의 하얀방을 읽은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실제 있을법한 생생한 이야기에 마음을 뺏긴 후 정이현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섭렵했다.
내가 정이현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순으로 나열하면 <낭만적 사랑과 사회>, <사랑의 기초>, <지현우 나온거>, <나는 모른다>, <오늘의 거짓말> 순인데, <말하자면 좋은사람>은 세번째 쯤에 위치할 것 같다.
단편보다 짧은 掌편 소설 모음 <말하자면 좋은사람>.
정작가는 외로운 존재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쓴 글을 모은 것이 이번 책이라고...
<낭만적 사랑과 사회>부터 나타났던, 마치 내 이야기 같은 글들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많이 발견이 되었다. 내가 겪었던 일이 그대로 들어있는... 그래서 이거 내가 쓴거 아닌가 싶기도 한 그런 느낌이랄까?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라는 소설.
거래처 직원이 국민학교 동창인 주인공을 알아보고, 동창 밴드에 주인공을 초청했는데 밴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 그 반의 왕따였던 '이미자'인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내용이 담긴 소설.
이미자는 모두의 '따'였다. 그 당시 왕따라는 단어가 아이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직은 그러지 않았던 때 같기도 하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왕따가 특정한 한 명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뜻하는 거라면 그건 그 시절 이미자에게 딱 즐어맞는 명명이었다. 인간은괜히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다거나 돈을 빼앗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방식으로도 타인을 괴롭힐 수 있지만, 그 외에 무한한 다른 방법들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이는 어른보다 쉽고 무구하게 행동에 옮겼다.
6학년 3반 아이들이 이미자를 괴롭혔던 방법은 무시하기였다. 이미자는 교실에서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존재였다. 그녀는 항상 거의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상의는 꽃사슴 밤비가 그려진 티셔츠와 신데렐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번갈아 입었고 하의는 늘 헐렁헐렁한 청바지였다.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죽어서 할머니와 산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실치는 않다. 누구도 구태어 확인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53~4 page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라는 소설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고명국민학교 6학년 5반. 우리 반에는 왕따 아닌 왕따가 3명이 있었다. 임**, 이**, 이**.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어, 학생의 99%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3명은 우리 아파트가 아닌 우리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하고 낡은 저층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이 아이들은 옷차림이 조금 허름했고, 말도 조금 어눌했었다. 앞의 2명은 지저분하다고 친구들이 싫어했었고, 뒤에 1명은 비만 때문에 놀림의 대상이었다.
소설과 같이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엔 왕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반 아이들이 3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같이 놀아주지 않았을 뿐. 간혹 남자애들이 짖굳은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그 때 그 모습을 보는 여자애들은 그냥 같이 웃을 뿐 그들의 장난을 말리진 않았던 것 같다.
임지현. 그 아이는 3번째 줄에 앉았던 아이였다. 내가 1학기에는 1번째 줄, 2학기에는 2번째 줄에 앉아서 나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아이. 그 아이의 짝은 황**이라는 꽤나 괴팍한 아이였고(이 아이가 때려서 울린 여자애들이 많았다), 황**은 임**을 매일 괴롭혔었다. 아직도 황**이 임** 등에 파리를 넣고 등을 확 치는 만행을 저질렀게 기억이 날 정도로... 임**이는 황**에게 엄청 괴롭힘을 당했었는데 아무도 그 것을 제지 하지 않았었다. 그저 보고 웃을 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원래 친하지 않았던 그녀는 아무와도 연락이 안 된거다. 그렇게 우린 대학을 갔다. 마침 그 때가 아이러브 스쿨 등으로 초중고교 동창들이 자주 만나는 시기였고, 여전히 한 동네에 사는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자주 만났었다. 수능 끝난 후 남자애들이 군대를 가기 전까지 두달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봤던 것 같다.
다음 카페에 고명국민학교 1994년 졸업생 모임이 먼저 개설이 되었고 이후 6학년 5반 모임이 개설이 되었다. 그런데! 6학년 5반 모임을 개설한 사람이 바로 임**이었다. 반창회에 한번도 안나왔던 우리반 왕따 임**카페를 만들어 놓았던 것. 그리고 소설 속 이미자와 같이 좋은 글귀를 계속 올렸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그녀.
그러던 와중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준영이가 재수를 해서 간 학교에 지현이가 선배로 있었다는 이야기... '기독교 교육학과' 00학번이었던 임**이와 01학번이었던 준영이. 수능 끝나자마자 연기한답시고 MTM 다니고 난리피던 준영이가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자신이 왕따 시키던 아이를 선배로 마주한 것이다.
준영이 말에 의하면, 다행이도 지현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도 같은 반이었던 것을 아는 척 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남자아이들이 군대를 간 후 반창회는 시들해졌고, 이제는 경조사가 있을 때나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임지현은 우리 모임에 나온 적이 없다. 사실 아무도 그녀의 연락처를 모른다.
임지현이 개설한 반 카페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 그녀는 그 때를 기억하기가 싫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다음카페를 개설했던 건지... 그리고 카페에 좋은 글을 올리는 등 온라인 내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 오프라인 술자리에 오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임**이 온라인에 좋은글을 올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친구들은 왜 그녀에서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지 않았던걸까? 어릴 적 행동에 대한 미안함에 선뜻 같이 놀자고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살고 있는지 급 궁금하다.
12월 31일은 누군가와 이별하기에 적당한 날이 아니다. 물론 이별을 통보한 상대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해가 바뀌기 전에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 새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쪽에도 입장이라는 게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도 있었다. 12월 31일은 누가라도 좀처럼 잊게 힘든 날짜였다. 구태여 그런 날을 작별 기념일로 지정하여 영원히 추모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작년 12월 31일 남자 친구가 태연을 가장한 목소리로 헤어지자고 말했을 떄 희정은 직감했다. 매년 12월 31일마다 재떨이를 혀로 핥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되리라고.
그리고 꼭 1년이 지났다. - 77~8 page
'시티투어버스'의 첫구절.
12월 31일은 누군가와 이별하기에 적당한 날이 아니다. 심지어 그 날이 생일 전날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12월 31일 11시 40분 한 남자와 이별을 했었다.
죽도록 힘들었는데~
그래서 매년 12월 31일이면 생각이 날줄 알았는데~
시간 지나니 그렇지도 않더라... 그 다음해 정도까지만 여파가 있고 요즘엔 전혀 생각도 안나는.
물론 그가 결혼을 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지...
12월 31일 이별 부분 읽으며 잠시 떠오른 그 사람.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잘 살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