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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by 하트입술 2013. 5. 4.

목요일. 동생이 이직하고 싶어 하는 곳의 직원 채용공고를 보고, 동생에게 네이트온으로 보내줬다.
금요일. 오래간만에 술 한잔하고 집에 왔는데 동생이 집에 없었다. 금요일이라 늦게까지 마시나보다 하고 그냥 잤다.
토요일. 아침에 수업들으러 가려고 준비하는데, 엄마가 "오늘 약속있니?"하고 물으셨다, 동생이 나랑 할말이 있다고 했다고... 녀석이 나한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대화 주제는 정해져 있다. "일" 혹은 "연애". 소개팅 했던 여자와는 안 만나고 있는 것 같고, "일" 이야기겠구나 하고 학교로 향했다.

9시 쯤 귀가한 동생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방으로 직행을 하더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려운가보다. 4개월 전 연구직으로 들어간 회사인데, 영업직으로 옮기라는 제안을 받았단다. 그 이야기를 하며, 그만 두는게 나을지 계속 다니는게 나을지를 묻는 동생.
4개월 전 이직하기 전에 다닌 회사는 7개월. 그리고 그 전에 회사는 1년 6개월인가?

너무 짧은 경력은 오히려 마이너스인데...
동생이 간 회사들마다 갑자기 사정이 어려워져서 연구실을 없애거나 줄이면서 희생양이 되었던 거다.
(혹은 연구실의 핵심인력이 아니었던게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선택할 때 난 "첫 직장에 따라 니가 앞으로 가게 될 직장의 루트가 달라진다"며 "천천히 괜찮은 회사를 골라서 가라"고 조언했었는데, 급하게 들어가더니 그 후 2번이나 직장을 옮겨버린...

오늘도 동생은 힘들어하며, 머뭇거리면서 고민을 말했는데, 난 거기다 대고 바른말만 마구 해버렸다. 동생이 직장을 선택했을 때의 문제, 신입이 아니고 경력직으로 가는데 회사를 제대로 안 알아보고 간 것(잘 알아보고 갔다면 회사의 사정이 이렇게 갑자기 나빠질 것을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동안 동생의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 등을 이번 기회에 털어놓은 것.

거기다 평소 동생이 "누나 같이 삻기 싫다고 말하던 그 누나"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하며 동생의 사회생활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언젠가 동생과 둘이 저녁을 먹는데, 그 때 동생이 진지하게 물었었다. "누나 행복해??"
"왜 누나 안 행복해 보여??" 라고 반문하니,
동생은 "누나 맨날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일만 하자나! 난 그렇게 살기 싫어!!".
"야근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야근을 해? 난 돈 받는 정도만 일 할거야"라고 말했었다.

그리곤 동생은 연차, 월차 꼼꼼히 다 챙겨먹으며 회사생활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회 초년생이 저 모습이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은 했지만, 뭐라고 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싫어하니깐 별 말 안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오늘, 동생이 직장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자 내친김에 그간 동생의 사회생활을 보며 하고팠던 이야기를 다 해버린거다.
동생이 이직 혹은 사직을 생각하는 이 시점에서...

평소 같았으면, 내가 한 말에 바로 성질을 내며 반박을 했을 녀석이. 오늘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누나 말이 맞다"며 "바뀌겠단다"

근데 그렇게 바로 수긍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다. 바득바득 대들었어야 정상인 녀석이 풀이 죽어버린 것이...

동생과 한시간이 넘게 대화를 한 후 내가 좋아하는 책 세권을 읽어보라며 줬다. 그리곤 또 반성을 했다.

동생에게 읽어보라며 준 책중 한권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매우 자주 주는 책이었다.
특히나 사회생활 초년생이나, 이직을 고민 중인 후배들에게 꼭 한권씩 사주는 책.
근데 그 책을 동생에겐 선물은 커녕 추천도 하지 않은거다.
내 책장에 꼽혀 있는 책인데, 내 책장에 있는 책을 동생 방에만 가져다 주면 되는건데...

평소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하는 편인데, 난 그 동안 내 동생한테 책 한권 선물로 준 적이 없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책 추천도 자주 하는 편인데, 난 그 동안 내 동생한테 책 한권 추천을 해 준적이 없구나...
남에게 하는 일을 내 가족에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성.

누나에게 모진 말을 듣고 책 세권을 들고 내 방을 나서는 동생을 보며, 앞으로라도 누나 역할을 더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과 난 3살, 4학년 차이가 난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동생.
나이 차이도 많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친한 남매인 우리.

남자 보다 더 털털하고 화끈한(외향적이기도 한) 누나와 여자보다 더 섬세하고 조용한 남동생.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부모님이 "제발 사람들 좀 그만 만나!"라고 잔소리를 듣던 누나와
항상 만나는 친구 몇몇만 만나서 부모님이 "니넨 지겹지도 않냐? 그만 좀 봐라!"라고 잔소리를 듣던 남동생.

여자인 나보다 더 애교가 많아서 항상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내 동생이 벌써 스물아홉이 되었고, 사회생활의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된 지금.

동생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

"이직 혹은 사직. 그까이꺼 다 그냥 지나가는 일이야. 니가 일 안한다고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니?
부모님도 누나도 너 하나쯤은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단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것저것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했음 좋겠어.
그렇게 고민한 후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제대로 실행했으면 좋겠다." 그게 누나의 바램이야.

동생한테 모진말 조금 했다고 내가 이다지도 힘든데, 나나 동생을 혼낼 때 부모님 마음은 더 많이 아프시겠구나... 부모님한테 잘해야지.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