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의 소설은 따뜻하다.
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박완서의 성장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가 삻아온 삶의 배경이 좋았다.
그는 전쟁을 힘겹게 겪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잃었겠지만...
난 그의 경험을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내가 겪지 못한 일들을 그의 글을 통해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친절한 복희씨>는 아줌마 혹은 할머니 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녀들이 주인공이다.
각 소설마다 각기 다른 내용이 담긴 소설집.
그리움을 위하여
그 남자네 집
마흔아홉 살
후남아, 밥 먹어라
거저나 마찬가지
촛불 밝힌 식탁
대범한 밥상
친절한 복희씨
그래도 해피 엔드
9편의 단편 소설.
제각각 다른 장년 혹은 노년의 여인이 주인공이 된 소설들...
그 여인들의 살라온 삶이 담겨진 단편 소설.
단편소설이라는 짦은 글에, 어떻게 그녀들이 살아온 삶을 다 담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소설을 읽고 마음이 묵직해 질 수 있게 한건지.
하나하나 모두 좋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마음을 울린다.
그 중 유독 더 좋았던 것들...
잘사나 집안일은 못하는 사촌언니와 가난하나 집안일을 잘하고 즐겁게 사는 사촌동생의 이야기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작가의 자서전 같기도 한 <그 남자네 집>
시아버지의 속옷에 화풀이는 하는 봉사회 회장 이야기 <마흔 아홉살>
미국에 시집간 딸막내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간 이야기 <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백발의 어머니가 젊고 힘찬 목소리로 악을 악을 쓰고 있었다.
하여튼 우리 엄마 밥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해. 아들자식을 원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겠지만 딸들 앞에서 아들을 특별대우할 때도 변명처럼 말하곤 했다. 야아는 제사밥 떠놓을 애니까라고.
아아, 가엾은 우리 엄마. 그녀는 달려오는 엄마를 한길 한가운데서 맞이했다.
"어디 갔었냐, 밥 뜸 드는데. 야아는 꼭 끼니때면 싸돌아다닌다니까."
그것도 어려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엄마 나 알아? 나 후남인 거, 알아보고 하는 소리야"
"야아가 에미를 놀리네. 밥 다 타겄다. 어여 가자."
아닌게 아니라 집 안에선 밥 뜸 드는 냄새가 구수하고, 부뚜막 앞에 서 있던 이모와 조카며느리와 그 밖에 낯선 여자들이 신기한 얼굴로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미국딸 보고 정신이 돌아오셨나 봐요. 안 그래요? 아주머니."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진작 오시지."
"정신이 돌아온 건지, 더 달아난 건지 원. 난 십년감수했다. 귀한 손님 왔으니까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챙겨오려고 야아네로 건너가서 찌개 간도 보고 나중에 고구마도 좀 쪄오라고 일르고 있다가 보니까 우리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뭐냐. 마당에도 연기가 자욱하고. 불난 줄 알았어. 이 화상이 이제 안 하던 불장난까지 하니 어쩔꺼나 한달음에 달려와 보니 멀쩡하게 밥을 짓고 있지 뭐냐. 곧잘 지었어. 안 쓰던 무쇠솥도 깨끗이 가셨나 봐. 밥에 녹물이 하나도 안 든 거 보렴." - 139~41 page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쨍...한.
어머니의 사랑. 엄마의 사랑.
"밥 먹었니? "밥 먹어라!"로 전달되는...
집에 늦게 들어갈 때면 엄마한테 오는 문자.
"오늘도 늦니? 밥 먹었니?"
엄마들은 '밥'이 참 중요한가보다.
그렇게 '밥'을 열심히 챙기지 않아도, 다 알아서 잘 챙겨먹는데...
자식들 입에 '밥' 넘어가는걸 봐야 흐뭇한 건 우리나라 엄마들의 공통점인듯.
그래서 저 구절을 보고 더 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이 책의 제목인 <친절한 복희씨>는 다른 소설에 비해 별로였다.
조금의 이질감이랄까?
성폭행을 당한 후 그 남자와 결혼하여, 전처의 자식1명을 포함헤서 5명의 자식을 기르고...
성폭행 가해쟈이자 남편이 된 남자는 나이가 들어 중풍을 맞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으로 삐뚤삐뚤하게 쓴 비아그라는 쪽지를 동네 약국의 젊은 약사에게 줘서 복희씨를 약국으로 가게 만드는... 거기서 느껴지는 불편함.
지독히도 이기적인, 그러면서도 본능에 충실한 남자와 그 남자와 한평생 같이 산 복희씨.
소설 내에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그 남자가 너무 밉고 싫었다.
나이 먹어서도 그러는 것이... 약국의 비아그라 대목을 읽으며 <시>에서 요양보호사에게 비아그라를 먹여달라고 하던 장면도 생각이 나고~
울컥 하는 장면이나 구절은 없어도~
울렁~하게 만든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공감하면서 맞아맞아 하며 즐겁게 보는 정이현, 전경린 등 젊은 작가들의 소설도 좋지만~
가슴에 울림을 주는 박완서, 은희경 등 나이 있는 작가들의 소설도 참 좋다.
가볍거나 경박하지 않아 울림을 주는 그런 소설.
<친절한 복희씨>를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