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인 쿄코와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슌페이...
슌페이와 쿄코의 매우 정적인 사랑이야기.
대학 때 수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회복지정책 관련 일을 하면서도
진지하게 청각장애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청각장애인이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수화나 구화, 혹은 필담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
그래서 비장애인에 비해 살아가는 것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지, 그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소설에서는 쿄코가 장애인이라고 동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좀 더 늦게 인지하는, 사람일 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린 곳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앞으로 발을 내딛으려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의 자리가 깔려 있어서 급히 발을 피하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래도 가까스로 다리를 벋딛디며 몸을 지탱하고,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타리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퍼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벌어진 사람들 틈으로 격투를 벌이는 젊은 두 남자가 보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밟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등 뒤에 벌어지는 소란과는 상관없는 양 자리에 앉아 있는 교코와 등을 마주 댄 형상으로 뭉쳐 있었다.
하필이면 구경꾼들은 교코와 등을 마주 댄 형상으로 뭉처 있었다.
엉겨붙은 사내들은 여자들의 비명 속에서 잔디를 뒹굴며 교쿄 쪽으로 다가갔다.
"위험해!"
누군가가 교쿄에게 지른 소리가 내 귀에도 선명히 들렸다.
"교코!"
소리처 보았지만, 교코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로 멱살을 움켜쥐고,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하면서 사내들의 다리가 얽히고 설켰다. 그들은 다리가 뒤엉킨 채로 교코 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사내 중 하나가 교코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어디선가 노란공이 굴러왔고, 교코가 허리를 들고 앞으로 기어가 그 공을 손으로 잡았다.
바로 그 순간, 마른 남자가 교코가 있던 자리에 쓰러졌다. 안도한 듯한,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소리가 잔디밭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