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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읽고 난 후 의원열람실에서 발견한 책. <레알 청춘>
<레알 청춘>은 비정규직(?) 열정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들의 삶과 생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책.
인터뷰어, 인터뷰이 모두 청년 노동자들. 그들이 풀어낸 청년 노동의 현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휙 읽어내려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나이가 꽤나 들었고, 기득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 진...
책을 내며| 청년유니온
추천의 글| 100만 명이 함께 꾸는 꿈 · 우석훈
읽기 전에| 여기 노동하고 저항하고 꿈꾸는 청년들이 있다 · 조성주
1장| 꿈을 향한 스파링, 현실과 치르는 맞싸움 / 조영훈이 만난 종합격투기 선수 차준호
2장| 청춘, 날개를 잃다 / 석진혁이 만난 남대문시장 도매점 배달원 박민재
3장| 연극을 향한 무한도전 / 장보연이 만난 연극배우 지망생 박다정
4장| 야만에서 예술 하기 / 김민수가 만난 만화작가 박해성
5장| 길 잃은 고양이들을 위해 / 조성주가 만난 임용고시 준비생 성다움
6장| 전주에서 서울로 꿈을 나르다 / 박보은이 만난 지방대 취업 준비생 서영상
7장| 포커페이스로 감춘 꿈 / 조성주가 만난 공기업 계약직 한지혜
8장| 사교육 노동자 수난기 / 장보연이 만난 학원강사 유혜원
9장| 예능과 다큐 사이에서 / 조성주가 만난 방송작가 장인영
10장| 특별하지 않은 엄친딸 / 박보은이 만난 비정규직 연구원 장주영
11장| 좌절 금지 희망 다큐, 철식의 루저전 / 석진혁이 만난 방송국 시설 관리 파견 비정규직 민철식
청년 노동자들의 삶은 늘상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저임금, 고용 불안, 상습적인 임금 체불, 부당한 대우 등. 그러나 이런 불안은 노동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바라는 꿈을 직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들도 다양한 불안감과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청년들의 모습에서 패배감 같은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주어진 조건과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자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청년들 중 그 누구도 쉽게 자신을 포기하거나 비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현실 조건에 대한 절망이나 후회보다 자신을 긍정하고 아끼려는 태도가 더 많이 나타났다. - 22page
청년들의 인터뷰 전에 나와있던 글귀.
여러 청년 노동자들의 인터뷰 글이 실려있었지만, 유독 눈길이 가던 한 사람이 있었다.
국회의원 6급 비서 후 지금은 남대문시장 도매점에서 물건 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 박민재(가명)
그를 인터뷰한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을 반추하게 되더라는... 하하!
선거를 계기로 그는 자연스레 서울에 다시 올라와서 일하게 되었다. 자신이 수행했던 국회의원 후보가 당선돼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6급 보좌관. 그 당시 연봉이 3300만원 정도 였는데 지금까지 일하면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직장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텔레마케터와는 다르게 일하는 보람이 있었지만 고충도 많았다.
"치열하고 힘들게 선거운동을 하고 후보가 당선됐을 때 가장 보람 있었죠. 보좌관으로 지낼 때엔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민원은 끝도 없이 들어오는데 충분히 논의하고 고민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때마다 힘들었죠. 특히 발의한 법안이 잘되면 좋은데 안 되면 정말 힘 빠져요."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점차 늘고 있다. 18대 국회는 임기가 반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17대 국회가 4년간 제출한 의원 입법안 5,728건을 훌쩍 넘겼다. 각종 민원 중에서 법으로 제도화해야 하는 것을 추려 여론, 법안이 영향을 미칠 이해당사자 간의 의견, 시민사회단체의 의견, 정부 부처 간의 입장을 고려해 법안을 만든다. 그렇다고 해도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속한 정당의 국회 의석수, 법안 통과를 위한 다른 당과의 연합, 정치 정세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실제로 17대 국회는 가결이든 부결이든 처리된 법안이 22.6%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뚫고 발의한 법안 중에 '주민소환제'가 있단다. 발의 이후 주민소환제가 적용되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신문이나 뉴스로 볼 때마다 보좌관 생활을 다시 추억한다고 한다. 그러나 보람도 있고 고충도 많았던 1년 남짓한 보좌관 생활이 그에게 남긴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 증세였다. - 63~4 page
그는 17대 국회 때, 수행비서로 선거운동을 한 후 그가 모신 분이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자 6급으로 국회에 들어와 1년간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보좌관이라는 명칭은 4급에게만 붙이는 명칭인데, 여기저기서 헷갈려서 쓴다.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 6급 이하 비서... 모두를 총칭하여 보좌진)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기를 새로운 국회가 열린 후 첫 국정감사가 끝나고 난 후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함께 하다 여의도로 온 사람들이 많이 그만둔다고 하는데, 그 또한 그런 사례였던 듯... 그가 일을 그만둔 이야기에 약간 공감이 가기도 하고 말이지.
그는 다른 보좌관들과 다르게 특별한 정당활동이나 사회 활동이 전무하다. 그런 그에게 안 보이는 무시와 차별도 있었을 것이고 같은학과 선후배 간에 일로 부딪치다 보니 상처가 더욱 컸으리라. 그는 결국 보좌관을 그만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봐좌관은 보통 고학력에 실무능력까지 겸비한 인재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보통 이직을 하는 경우라도 그에 준하는 일자리가 주어지거나 함께 일했던 국회의원이 원하는 직장에 추천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형 마트 영업 관리직 일을 시작한다. 날개가 한번 꺾이면 끝없이 추락하는 게 청춘의 삶이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대형 마트 영업 관리직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보좌관 생활과는 전혀 다른 근무 환경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 내의 권위주의는 그의 추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 65 page
국회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보좌진을 몇가지 타입으로 나눠보면 학생운동 출신, 언론인 출신, 시민단체 출신, 연구원(대학원) 출신 등이 있는데, 민주당이나 민노당에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4급 보좌관들 중에는...
치열한 대학시절을 보낸 후 국회의원이 되고 보좌관이 된 그들. 그들을 보며,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있었던 내 세대의 보좌진들은 약간의 상대적 박탈감 혹은 이질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가진 사회과학적 지식. 그리고 그들의 무용담들... 아마도 박민재씨 또한 그랬던 것 같다.
국회를 그만둔 후 추락해버린(?) 박민재씨. 그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내가 국회를 그만둔다면? 그 이후는 어디로 갈까?? 종종 생각은 해 봤으나,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지점. 막연히 몇년간 국회에 더 있고 국회를 그만두면 시민단체나 연구원 혹은 복지 관련 공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박민재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커다란 날개를 달고서 태양을 향해 비행했던 이카루스. 그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비행하다 날개를 붙일 납이 햇볕에 녹아내려 땅에 떨어져 죽게 된다. 박민재, 그는 한때 보좌관이라는 날개를 달고 난 적이 있지만 그 날개가 녹자마자 추락하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각, 많은 청춘들이 취업이라는 태양을 향해 스펙이라는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달려들고 있다. 고꾸라질 것을 알면서..... 그 와중에 대다수는 이미 추락을 경험했으리라. 무엇이 이들의 날개를 빼앗는 것일까? 오늘도 어떤 청춘들은 가뭄 든 냇가에서 물고기가 헐떡이며 숨 쉬듯이 바닥에서 파닥거릴 것이다. 그 누가 불안과 방황과 사랑은 청춘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열병이라고 했던가. 허나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이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가혹하다.
청춘, 그 이름 앞에 많은 미사어구가 붙는다. 희망, 꿈, 미래, 태양...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청춘은 어떤가? 청춘을 대표하는 색깔은 푸른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청춘들은 푸르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푸른 낯빛 어딘가에 그늘진 다크서클을 감추고 있는 청춘들. 불안한 미래를 앞에 두고 고단한 일상을 꾸역꾸역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박민재 씨의 삶은 나와는 다른 화성인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사회는 더욱 더 청춘들을 옥죌 것이다. 태양은 더 뜨겁게 내리쬐어 더 빠른 속도로 '이카루스의 날개'를 녹일 것이다. 우린,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아진 모른다. 아니, 영영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안다. 언젠가 밤이 온다는 것을, 우리가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서로 손잡고 힘차게 날갯짓할 날이 올 것을. 그렇게 우린 패자부활전을 꿈꾼다. - 76~7 page
이카루스의 날개. 패자부활전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공기업은 100조가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면서 방만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 이런 비판이 더욱 매서워지면서 공기업과 정부 부처들은 허리띠 조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갖 수치와 통계를 들면서 방만 경영이니 비효율이니 하며 날을 세워 이야기 할 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처지, 미래를 우리는 얼마나 고민해보았을까? - 167 page
이 부분을 읽고는 많이 뜨끔했다. 수치만 보며 무언가를 판단하는 국회 사람들. 그 공간 안의 사람들을 얼마나 생각해 본걸까 우린?
처음 그녀를 만날 때 가졌던 부담감과 달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점 그녀가 좋아졌다. 좋은 친구랄까, 좋은 언니랄까. 분명 그녀는 특별했다. 그녀는 엄친딸로 살아왔으며, 고학력자이고, 시의원에 출마했다. 이 평범하지 않은 프로필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특별했지만,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는 방식도 특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언젠가는 가고 말거라는 유학을 갈 수도 있었다. 대학원 공부와 연구원 일을 할 때 조금 참고 순응했더라면, 지금쯤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어렵지 않은 당연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의문을 품었고 한국 사회의 문제를 느꼈다. 게다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녀의 그런 행동력이 참 좋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이런저런 생각이 넘쳐날 뿐이라고 했다. 행동보다는 생각이 많은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그럼 난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넘쳐나는 그녀가 참 좋다.
그녀는 대전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결국 낙선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거기서 또 할일을 찾았다고 했다. 그렇게 다음 선거를 준비하며, 현재는 대전에서 활동가로 바쁘게 살고 있다.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싶었던 문화 정책에 대한 공부는 잠시 미뤄준다고 했다. 대전에서 그녀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이런 그녀는 또 특별하지 않기도 하다. 그녀가 겪었던 시련들은 그녀만의 시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를 살아가는 나와 또 다른 20대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기 문제에 너무 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날 때는 화내고, 힘든 일이 생기면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 토익 학원 다니느라 힘들다, 학자금 대출 갚느라 힘들다, 아르바이트 힘들다...... 누구한테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옛날에는 참아내는게 최고인 줄 알았어요." - 231~3 page
멋진 그녀. 행동할 줄 알았던 그녀.
이렇게 사는 청춘들이 많으면 이 사회가 조금은 더 빨리 변할 수 있을텐데...
나 조차 그러지 못하고 있으면서,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가???
최근 난 <레알 청춘>과 같은 류의 책이 좋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는 책.
<레알 청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4천원 인생> 등과 같은 그런 책들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난 후,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꿔야 하는데...
작은 것 하나 조차 바꾸는게 쉽지 않으니... 갑갑할 뿐.
하지만, 알아야 고칠 수 있다 믿으며 또 이런 책들을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