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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했었다.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등
그래서 얼마 전 <빨간장화>에서 한번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녀의 소설을 집어 들고 말았다.
이번엔 한 가족 이야기.
무뚝뚝하고 감정표현 잘 안하는 아빠.
감성적인, 본인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엄마.
결혼을 했으나 이혼을 생각 중인 첫째 소요 언니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고, 두번의 자살시도를 했으며, 이상한 남자들만 사귀는 둘째 시마코 언니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나
성인용(?) 여자 인형을 만드는 것이 취미인 막내 남동생 리쓰
그리고 남자친구 후카마치 나오토
5식구 중 끝에서 두번째인 내가 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가족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시마코 언니가 매달 월급을 받아 모든 식구들을 위해 이상한 선물(?)을 사와도...
중학생 아들 리쓰가 성인용 인형을 조립해서 팔아도...
결혼을 한 소요언니가 이혼을 하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족이라.
우리집이었다면? 아니 일상의 대다수의 집이었다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평범 혹은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제재를 가했겠지.
우리집 또한 다른 집들에 비해, '너 하고픈 대로 해봐라'하고 냅두는 집 중 하나긴 해도...
그래도 내가 만약 대학을 안 갔다면... 그리고 결혼을 해서 이혼을 생각한다면... 부모님이 저리 쿨할 수 있었을까?
색다른 그럼에도 참 끈끈한 가족 이야기에, 우리 가족들 생각을 해봤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 동생.
일이 바쁘단 핑계로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 가족들.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여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는 가족.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일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굴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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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내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잘 사는건지 최근 더욱 더 헷갈리고 있는 내 인생.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삶인가 의문이 드는 요즘.
새해는 조용히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2층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창문으로 후지산이 보였다. 샤워를 하고, 가족이 모두 모여 새해 축하주를 마셨다.
설날.
2일 밤에는 모두 모여 '새해맞이 글쓰기'를 했다. 우리 집 연례행사 중 하나다. 올해에는 각자 이런 말을 썼다.
한가롭던 봄날의 하루도 어언 기울어-나
상서로운 빛이 봄을 머금었네-소요언니
음양의 기운이 조화로워 천지에 봄이 오니-사미코 언니
복숭아꽃 살구꽃에 봄바람 부니 그 향기 온 동산에 가득하여라-엄마
버들은 갓 잠에서 깨어난 듯하고 늙수그레한 매화는 볼만하구나-아빠
비에 씻긴 청산은 맑기만 하여라-라쓰
설 연휴는 고요하고 평범하고 안심도 되지만 따분하다. 우리집 떡국은 맑은 국물에 구운 찹쌀떡을 띄우는 도쿄식이다. 떡 외에는 닭고기와 겨자 시금치와 파드득 나물과 유자 껍질을 조금씩 곁들인다. 하지만 사흘째에는 엄마가 백된장으로 떡국을 끓인다. 백된장 떡국도 맛있으니까. 토란이 들어 있는 백된장 떡국은 겨자를 살짝 풀어서 먹는다.
해거름이 되면 대게는 누군가가 동네를 산책하러 나간다. 받은 연하장의 답장을 우체통에 넣기 위해서다. 길은 여느 때보다 넓고, 사람도 자동차도 많지 않고, 공기가 평소보다 투명하다. 하늘도 한층 넓어 보인다.
우리의 설 연휴는 늘 이렇다. 나는 올해, 스무살이 된다. - 146~7 page
이 대목을 보고 우리 가족의 설 연휴를 떠올려봤다.
12월 31일 4식구가 함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면 1월 1일 1시 즈음.
그러면 그 때 내 생일 파티를 하고(생일이 양력 1월 1일), 케익을 먹고 잠들고...
1월 1일 아침에 깨어나서 아침식사로 미역국을 먹고 난 후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일상.
음력 설날에는 설 연휴 시작 전날 혹은 연휴 시작하는날 충남 서천 할머니댁으로 내려가서~
그 곳에서 연휴 내내 있다가 연휴 마지막날 올라오는 그런 일상. ^^
책을 읽으면 좋은 점 중 하나가...
책을 보며 내 삶을 내 일상을 내 주변을 반추해 볼 수 있다는 것.
그런 면에서 <소란한 보통날> 이 책은 참 좋았다. <빨간장화>와 달리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