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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Movie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소와즈 사강) & 박정자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y 하트입술 2009. 2. 9.

월간 객석에서 일하는 친구 덕분에, 종종 정미소에서 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박정자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티켓을 줘서 지난 2월 8일 공연을 보러갔다.
클래식 모놀로그라는 것을 빼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


공연을 보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는 프랑스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이 쓴 소설.
그래서 바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판사 앞에서 당당히 소리쳤던 사강.
그런 그녀가 20세 연상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 후 24세에 쓴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러한 사전정보 없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가슴 저릿함.
너무나 익숙한 사랑. 그러나 모든 것을 함께하지 못하고,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랑.
그에 비해 너무나 격렬한 사랑, 모든 것을 베푸는 한결 같은 사랑.

38살 폴르는 로제와 5년간 연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24살 시몽.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는 시몽에게 폴르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로제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
그러나 결국 폴르는 로제에게 가버린다. 책을 읽으면서, 폴르에게 공감이 가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려져 있는 창가로 다가가 두 눈으로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눈이 부신 채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이 한 마디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모든 것들과 그녀가 고의로 자기 자신에게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존재 외에 또 다른 어떤 것을 좋아 했었던가? 물론 그녀는 스땅달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좋아한다는 그 말 자체였다. 그렇다면 혹시 로제를 좋아한다는 것도 단순히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올바른 답을 구한 것 같았으며, 또한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들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다. 스무 살 때처럼.


책을 읽고 나서, 공연을 봤다. 클래식 모놀로그라는 생소한 공연.
연극배우 박정자씨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책 부분 부분을 읽어주고..
중간 중간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영화 그리고 일러스트

1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은 다른 공연과 다르게 여백이 참 많았다.
박정자씨의 독백, 클래식 공연 그리고 영상 중간중간의 여백 동안 여러 생각이 오갔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난 당신 없이 혼자 살 수가 없었어요. 마치 허공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지요. 권태조차도 느끼지 못했어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당신은?

-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시몽의 고백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말을 더듬거리는 시몽. 무언가 완전한 것을, 아니 최소한 반쪽이라도 완전하게 가져다줄 것 같은 시몽이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항상 둘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항상 앞장서거나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지쳐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했지? 내 사랑은 어떤 색깔일까? 등
1시간 동안 클래식에 흠뻑 빠져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연기자들의 공연을 즐기던 다른 공연과 너무나 다른 독특한 공연.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공연을 통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공연.

낭만주의 시대에 고전파 음악의 전통을 지켜 독자적 작풍을 견지했던 요하네스 브람스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평생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고백 한번 못한 채 독신으로 살았던 독일이 낳은 작곡가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1853년 9월 30일.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였다. 당시 무영이었던 브람스는 친구인 요하임의 권유에 의해 슈만의 집을 방문하게 되며, 이후로 14살 연상의 클라라를 흠모하게 된다. 자신의 음악적 천재성을 인정해준 슈만은 그에게 은사이자 동시에 후견인이으며, 결국 브람스의 사랑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일방적 사랑마저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없었던 브람스에겐 음악만이 그의 사랑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