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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최저생계비 체험

[최저생계비 24일차] 평범한 토요일~!

by 하트입술 2010. 7. 24.
최저생계비 24일차. 최저생계비 체험 이후 가장 일상적인 주말을 보낸 것 같습니다. 평소 제 일상 그대로를 보낸 것이지요. 점심에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밥 먹고, 커피마시면서 수다떨고, 소풍도 가고! 저녁엔 교회 청년부 모임을 가고(이건 비일상적인)!음... 다시 생각해 보니 일상이 일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소비패턴이 일상적이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7월 24일 가계부>

실컷 늦잠자고 바로 점심약속을 갔습니다. 당연히 아침은 못 먹었습니다. 늦잠자서 후다닥 준비하고 나가느라 말이죠. 오늘 점심약속은 친한친구 생일! 요즘 생일 시즌인 것 같습니다. 생일파티가 어찌나 많은지... 지난 가계부를 쭉 살펴보니 7월 8일 지경이 생일파티(생일 6월 24일), 7월 9일 아빠 생신(생신 7월 9일), 7월 21일 은아 생일파티(생일 7월 26일), 7월 23일 은아&전비 생일파티(생일 7월 26일, 8월 2일), 7월 24일 상희 생일파티(생일 7월 27일). 7월 한달 동안 생일파티가 총 5번 있었습니다. 생일과 관련된 지출은 105,000원! 주거비를 제외한 최저생계비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빠 생일선물이 빠졌으며(최저생계비 체험으로 인해 선물을 못 드리고 함께 식사만..), 7월 24일 큰외삼촌 생신, 7월 28일 동생 생일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내일이 큰외삼촌 생신이라 외갓집 식구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는데 저는 불참을 생각 중입니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함께 하는 저녁식사 자리인데, 식사를 한다면 그것 또한 최저생계비로 책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부모님께 저녁식사를 못 간다고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저를 워낙 예뻐해주시는 큰외삼촌이셔서 안가면 많이 서운해 하실 것 같아 고민 중입니다.

여하튼! 오늘 친구 생일파티는 반포에 있는 Ola에서 했습니다. 지난 제 생일에 생일파티를 여의도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Ola에서 했었는데 친구들이 너무나 맛있어 하여, 오늘 생일이었던 친구도 여의도 Ola에서 하려다 거리가 먼 관계로 반포 Ola로 간 것이죠. 평소 정말 많이 좋아하는 Ola. 최저생계비 체험 중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못 갈 줄 알았는데, 친구 생일인 덕분에 찐~한 크림파게티인 페투치니 등을 포식했습니다.

                                                         <반포 Ola 맛있는 음식들!!>

저는 친구나 지인들과 생일회비를 내서 생일을 챙기는 모임이 3개가 있습니다. 오늘 모인 중학교 친구들 0216 Forever(생일회비 30,000원), 지경이 생일을 함께한 동네친구들 모임인 열혈년아(생일회비 25,000원), 은아 생일을 함께한 국회 모임인 삼수회(생일회비 15,000원). 그 중 0216 Forever과 열혈년아는 생일자에게 생일회비를 모아서 케익을 사고 남은 잔액을 생일선물로 줍니다. 원래는 그 비용 정도의 선물을 사 줬었는데, 매번 그 금액에 딱 맞는 선물을 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현금을 주고 현금을 받은 생일자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서 저희에게 보여줍니다. 대신 생일파티날 식사는 생일자가 쏩니다. 0216 Forever는 서로 생일을 이런 방식으로 처음 챙겨준게 고등학교 때니까(그땐 회비가 5,000원) 벌써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있고, 열혈년아는 2003년인가 2004년부터 서로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생일파티인거죠(저희 엄마는 모임 운영방식을 가지고 서울 깍쟁이들이라고 놀리십니다).

생일선물 비용을 모으고, 생일자가 생일파티날 쏘는 방식을 가진 모임 덕분에 오늘 저는 이탈리안 음식을 포식했습니다. 7월 들어 처음 이탈리안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유독 더 맛있더라구요. 평소 정말 좋아하던 Ola, 최저생계비 체험 동안에는 절대 못 먹을 줄 알았습니다. 스파게티 하나가 18,000원 정도로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비해 고가이기 때문에 절대 못갈 줄 알았는데 생일 덕분에 가다니!!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전 본능적인가 봅니다. 최저생계비 체험 이후 "본능적"이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비해 먹는 음식종류나 양이 제한적이다 보니 업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제 모습을 보며 주변에서 "본능적"이라며 구박을 한 것입니다. 어쩜 먹는걸 그렇게 좋아하냐고 말이죠.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하나! 전 먹는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근데 먹는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면서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평소엔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결핍을 모르고 살다가 결핍이 되고 보니, 그 부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단지 음식(?) 때문에... 원없이 이탈리안 음식을 먹고, 거기다 치즈케익에 아이스커피까지!! 여의도 Ola는 커피를 무료로 주지 않는데 반포 Ola는 메인메뉴를 시키면 커피가 무료더라구요. 덕분에 점심식사만 원없이 하고 커피는 못 마실줄 알았는데, 아이스커피에 치즈케익까지 먹어서 7월들어 가장 행복했습니다. 역시 먹는건 중요합니다. 매우매우!!

점심식사에 커피까지 한 곳에서 해결한 후 저희는 킴스클럽에서 맥주를 사들고 한강으로 향했습니다. 잠원지구에 돋자리를 깔고 맥주한잔 하면서 수다떨기, 그리고 친구 딸래미와 놀아주기! 처음엔 낯가리던 친구 딸래미가 몇시간 같이 있으니 이젠 먼저 물총에 물 넣어 달라고 하는 등 같이 놀자고 합니다. 매번 친구들과 만날 때 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친구 딸과 잘 놀아주는 편인데, 자주 못 봐서 그런지 이 녀석은 볼 때마다 초반엔 낯을 가리는 것이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이모이모 하는거 보면 어찌나 이쁜지!

                                                         <하은이랑 이모>

친구들과는 고수부지에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쇼핑센터로 이동하여 함께 쇼핑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친구들이 샌들을 사고 귀걸이를 살 때 전 옆에서 구경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최저생계비를 다 쓰고 마이너스를 찍은 마당에, 물건을 사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밟히는 물건들은 참 많았습니다. 여름 휴가용 원피스, 제가 유독 좋아하는 알이 큰 반지, 화려한 귀걸이 등! 사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500원짜리 물을 사먹는 것이 아까워서 집에서 보리차를 패트병에 담아서 들고다니는 주제에 쇼핑은 어불성설인거죠.

아. 최저생계비 이후 제 옷차림에 대한 지적이 꽤나 많습니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면서 옷차림과 악세사리가 매우 화려하다는게 그 이유입니다. 오늘도 그런 지적을 받았습니다. "최저생계비 체험 중인 애가 옷이 너무 화려한거 아냐?" 올 여름엔 옷을 하나도 안사고 집에 있던 옷을 번갈아 입고 있는데, 평소 입던 옷 중 화려한(?) 옷이 많은지라 이런 지적을 받는 것입니다. 근데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면 옷도 꾸질해야 할까요?" 왜 다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는데 옷이 화려하다는 것을 지적하는지 전 이해가 안갑니다. 이미 집에 있던 옷을 입고 있는건데 말이죠.

친구들과 헤어진 후 오래간만에 교회 청년부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시간이 늦어 청년부 예배는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날라리 크리스쳔 생활 좀 청산해야 하는데... 아직도 교회모임 보단 사회가 더 좋은걸 보면 아직 수양이 덜 된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7월부터 청년부 그룹이 바뀌어서, 하반기에 그룹이 바뀐 후엔 처음 간 청년부 모임이라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매일 문자로만 연락하던 그룹장 얼굴도 보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평소 그룹모임 때는 서로 돌아가면서 간식을 사와서 함께 먹습니다. 오늘 간식은 라볶이, 김밥, 팝콘치킨, 바나나, 빵! 다른 음식들은 가격산정이 어려울 것 같아 바나나 1개와 오렌지쥬스 1잔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그것 만으로도 허기가 가셨습니다.

                                                    <바나나와 오렌지쥬스>

가장 일상적인 주말모습. 최저생계비 체험 이후 7월 3일(10만원 이상 지출한 날)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가장 평소 같은 주말을 보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총 지출액은 31,710원. 결국 일상적인 날은 지출을 많이 한 날과 동일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가 평소에 지출을 많이 하고 살아왔던거죠. 최저생계비 24일차. 최저생계비 체험이 진행될 수록 8월에 사야 할 물건들의 리스트와 8월에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가 쌓여갑니다.

사고싶은 물건,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최저생계비 증액에 대한 부담감 또한 늘어갑니다. 저는 단지 한달동안 체험을 할 뿐인데,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들은 항상 최저생계비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최저생계비를 가지고 말이죠. 이미 24일간 최저생계비 온라인 체험을 하면서 최저생계비만으로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올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까요? 단지 최저생계비 너무 작으니 올려달라! 라는 피상적인 주장 만으로는 최저생계비가 올라갈리가 만무합니다.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와 팩트가 필요합니다. 지금 제가 그리고 다른 온라인 체험단과 장수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체험단의 7월 한달 간의 가계부가 그 데이터가 될 수 있겠죠? 이 체험이 끝나면, 최저생계비 체험이 단지 체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최저생계비 인상이라는 정책적 아웃풋을 도출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