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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에 다 읽어버린 책 <알레프>
처음엔 그닥 재미가 없어서 덮어버릴까 했었는데, 중간 즈음부터 빠져들기 시작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자전적인 소설.
실제 경험한 것을 소설화 한.
<아크라 문서>에 이어 <알레프>를 읽고 난 후 파울로 코엘료가 '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전작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점. 아니면 <연금술사>,<11분>등을 읽었던 때는 대학생 때라 읽고 나서 영적인 부분이 나왔던 것을 놓쳤을수도...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한 젊고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랄. 그리고 그들의 영적 교감.
지금 나는 빛을, 어떤 성스러운 장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물결 하나가 밀려오더니 사랑과 평화로 내 안을 가득 체운다. 이 두 감정이 함께 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보고 있지만 동시에, 긴 코를 올려세운 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을, 사막의 낙타들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을, 거리를 가로질러가는 강아지를, 장미 한 송이를 그린 그림을 막 마치려는 여인의 손에 들려 움직이는 붓을, 스위스의 산위에서 녹고 있는 눈을, 이국의 찬송가를 부르는 수도승들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도착하는 순례자를, 양들을 몰고가는 목동을, 막 잠에서 깨어나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들을, 바닷속 물고기들을, 전 세계의 도시들과 숲들을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또렷하고 거대한 동시에, 지극히 작고 부드럽다.
나는 알레프에 있다.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
나는 창문을 통해 세상과 그 안의 비밀스러운 장소들과, 시간 속에 잊힌 시들과, 공간 속에서 잊힌 말들을 바라보고 있다. 힐랄의 눈은 내게 이야기하고 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지만 항상 거기 있는 것들, 육체가 아닌 오직 영혼을 통해서만 발견되고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들을.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완벽하게 이해되는 문장들을. 한껏 고양시키는 동시에 숨막히게 하는 감정들을. - 115~6 page
'알레프'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
경험해 보진 않았어도, 알레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살면서 알레프를 경험해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영에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다)
"글을 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야오는 계속 이 화제로 얘기하고 싶어한다.
"사랑해야 합니다. 선생이 아내를 사랑했던 것처럼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것 처럼요."
"그냥 그거면 되나요?"
"우리 앞의 이 공원이 보이지요?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되풀이해 이야기 되었음에도 반복해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지요. 작가, 가수, 정원사, 통역자, 우리 모두는 우리의 시간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 129 page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 혹은 특정한 친구에게 보내줄 만한 내용이 있으면, 그 구절을 사진 찍어서 보내곤 한다. <알레프>를 읽다가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냈던 부분.
글을 쓰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사랑.
결국 무엇이든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한단 거겠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언제나 걷고 싶은 길.
누군가에겐 그냥 '길'일 뿐인 길.
원터공원과 삼익그린2차 아파트 사이에 있는 인적이 드문 길.
길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500미터 정도에 불과한 짧은 길.
일차선 도로 양 옆의 높게 자란 플라타너스 나무 덕에 여름에도 항상 그늘이 져있는 길. 그래서 시원한 길.
명일여고, 명원초, 배재중고, 명일여중(이제는 명일중) 학생들이 통학할 때만 왁자지껄 해지는 길.
통학 시간이 아닐 때에는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
길의 중간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우성아파트로 가는 쪽길이 있고, 삼익그린2차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길.
중학교를 오가며 친구들과 많이 웃고 떠들었던 길.
고등학교 때 독서실을 다녀오다가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어서 한~참이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길.
지금은 운전을 해서 집에 올 때면 항상 지나가는, 지나가는 순간이 너무 짧아서 계속 이 길만 뱅뱅 돌고 싶게 만드는 길.
결혼을 해서 지금은 동네를 떠난 친구들이 많이 그리워 하는 길.
작년 여름, 퇴근 길에 차를 정차하고 매일 지나는 길 사진을 찍었었다.
푸르른 나무와 가로등. 지나는 차나 인적이 없는 고요한 길.
매일 퇴근길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이런 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길 위에서 나눴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래서 길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더니, 역시나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댓글을 달아놨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길'이지만 우리에겐 '추억'인 길.
계속 동네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애틋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려 동네를 떠난 친구들에게는 친정과도 같은 길.
<알레프>에서 사랑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구절을 보고 떠올랐던 길.
그 공간, 그 물건, 그 사람을 사랑해야 글이 써지나보다.
결국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지.
"사람들이 내게 흘리게 했던 눈물을 용서합니다.
아픔과 실망을 용서합니다.
배신과 거짓말을 용서합니다.
중상과 음모를 용서합니다.
내게 상처입힌 폭력을 용서합니다.
짓밟힌 꿈들을 용서합니다.
꺾여버린 희망들을 용서합니다.
비정함과 질투를 용서합니다.
무관심과 악의를 용서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불의를 용서합니다
분노와 학대를 용서합니다.
부주의와 망각을 용서합니다.
세상을, 그 안의 모든 악을, 나는 모두 용서합니다."
그녀는 팔을 내리고 눈을 뜨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녀를 끌어안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는 손짓으로 나를 제지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얼굴을 위로 향한다.
"나는 또한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과거의 불행이 더이상 내 마음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슬픔과 원 한이 있던 자리에 나는 이해와 분별을 놓습니다. 분노가 있던 자리에 나는 내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음악을 놓습니다. 고통이 있던 자리에는 망각을 놓습니다. 복수가 있던 자리에 승리를 놓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빼앗겨도 줄 수 있고,
역경 속에 홀로 버려지더라도 손을 내밀 수 이고,
눈물이 흘러넘칠 때에도 눈물을 마르게 할 수 있고,
아무도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두 손을 내 머리 위에 얹고는 천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권위를 갖고 말한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 234~6 page
<알레프>에서 보고 일기장에 써 놓은 구절.
좀 길어도 좋아서 다 옮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