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7일 타계한 스테판 에셀.
마지막 레지스탕스라고 불리운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본 그 날. 국회도서관에서 <참여하라>를 빌렸다.
<분노하라>를 보며 많이 공감을 했기에...
<참여하라>도 비슷할 것이라 예측하고 빌렸던 책.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주장한 그의 글. <분노하라>, <참여하라>
결국 분노만 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정치권을 욕만하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끌려가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내기.
가장 최소한의 목소리는 투표.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시민단체 등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것.
몇 부분 발췌해봤다.
저항이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우리 주위에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만 한다는 생각을 가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단정하고 체념하는 것,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 24 page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져도 그져 남의 일이려니 방치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바꿔야 하는 일임에도, 내 일이 아닐 경우 나몰라라 하는 일.
그 '나몰라라'가 세상을 망치는거다. 단정하고 체념하지 않기. 조금이라도 바꾸어 나가기.
인생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앞둔 청소년들을 만나면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무엇이 너희를 분노케 하는지, 무엇이 참을 수 없는 일인지 스스로 한번 물어보라.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면, 그에 맞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싸울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해보라." - 26~7 page
그러므로 싸움은 다양합니다. 이 점에서 '레지스탕스'라는 말도 지혜롭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겐 레지스탕스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저 저항만 한다고 해서 레지스탕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항 그것은 창조요,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라고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저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읻느 단순화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한 사고입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지혜로운 사고는 지성이나 창의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균형 감각에서만 나옵니다. 사람은 음과 양 어드 한쪽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지요. 반드시 균형이 필요합니다. - 73 page
내가 분노하는 것은 무엇이며,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상식에서 벗어난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
분노하는 부분에 맞서 싸우기.
싸움이 주 업무(몸 싸움 보단 거의 논리 싸움이긴 하지만)인 곳에서 일하며, 싸움의 스킬만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큰일이다. 왜 싸우는지? 싸움의 지점이 명확해야 하는데...
간혹 싸움의 주제가 아닌 싸움의 기술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기도.
"저항 그것은 창조요.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것들.
남녀평등, 선거권 등...
그 동안 저항을 통해 만들어 온 것은 수도 없이 많다.
단지 우리나라의 경우는 산업화가 늦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들여옴으로써 저항의 강도가 적었을 뿐.
균형감각.
간혹 내가 너무 좌로 치우친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간혹 새누리당 보좌진들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너무 색깔이 뚜렷하다고...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는 건 아닌것 같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고를 하고 있다. 이건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이다. 어떻해서든.
지금까지 성취한 것도 매우 많지만, 앞으로 쟁취해야 할 것도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중에야 제가 깨달은 것은, 자연 문제나 환경 문제 등도 인권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권리만큼 자연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저의 달라진 인식입니다.
그런 인식 말고는 제 생각은 그때와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다음세대들이 자신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상대적 낙관주의도 그대로이고, 인간 정신과 도덕적 양심은 아직도 계발할 여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확신 또한 그대로입니다. 각 세대마다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사르트르 식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사르트르의 이런 말처럼 말이지요.
"사람은 진정으로 참여할 때,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느낄 때 비로소 참된 사람이다." - 84~5 page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말... 참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