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박사과정.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대학원은 생각도 안했었다.
그래서 첫 직장이었던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합격을 한 후 김연명교수님께 합격소식을 전할때 "1년만 일하고 대학원 와라!"라고 하셔서 의아했었다. "난 공부 더 안할껀데..."라고 말이지.
그런데 삶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 법.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딱 1년 15일 동안 일한 후 정규직을 때려치고 월급을 반으로 줄여 인턴 신분으로 국회에 복귀하고, 국회에 복귀해서 6개월 쯤 일하다 보니,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국정감사 중 사무실에서 몰래 연구계획서와 학업계획서를 쓰고...
국정감사를 마친 후 마침 사회보장학회에서 하는 '노인장기요양제도 토론회'가 한양대에서 하루종일 있어서, 토론회 참가한다고 한양대로 가서 충엽이 학생증 빌려서 하루종일 한양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공 원서를 봤었다(울 과는 대학원 입시 때 원서 번역 시험을 본다).
그렇게 하루 공부하고 번역시험을 보고 면접을 봤고, 운 좋게도 합격을 했다.
이후 한학기 동안 국회 인턴일과 일반대학원 수업을 병행 했고...
석사 2학기 때 대선과 총선(석사 3학기)을 앞두고 휴학과 사직의 기로에 섰을 때, 사직을 하고 풀타임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 신문사에서 편집위원 활동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면서...
그렇게 3학기 동안의 풀타임 학생 생활을 마친 후, 논문을 쓰고 있던 2009년 3월 국회 모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다. 사람을 뽑으니 원서를 넣어보라고... 그렇게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국회 복귀 후 한달간 매일 밤을 새서 논문 중간심사를 마쳤고... 그리곤 논문을 포기했다.
새로운 의원실에서 일을 하는데... 논문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논문에서 손을 놓고 있다가. 2011년 다시 논문을 잡았다. 논문 중간심사까지 마쳤던 그 논문은 데이터(2008년 데이터) 때문에 버리고 새로운 주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 그렇게 1년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논문을 써서 2012년 2월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원없이 논 2012년.
하지만 반년 정도 놀고 나니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써버리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무언가를 다시 채우고 싶다는 생각.
고민 끝에 박사과정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공부를 마치자는 다짐.
석사와 달리 박사는 2명 이상의 추천서를 내야 했다.
지도교수님, 그리고 다른 교수님 한분. 18대 때 모셨던 의원님.
석사 때와 마찬가지로, 박사 원서 모집 시기 또한 국정감사와 겹쳐서 사무실에는 차마 박사원서 접수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원서를 넣었다.
18대 때 모셨던 의원님께 연락을 드리니, 너무나 흔쾌히 "집으로 와!"라고 말씀해 주신 의원님.
그렇게 일요일 오전에 의원님 댁에 가서 박사 추천서를 받아왔다.
의원님이 써주신, 애정이 담뿍 담긴 추천 글.
***는 지속적으로 사회복지정책과 현장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면서 연구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원들을 탁월하게 보좌하여 우수의원으로 인정받게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리하게 아이템을 찾아내고 대안을 마련하면서 분석하는 능력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가 깊이있는 학문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복지정책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직장을 다니면서 수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의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 그리고 현장과 밀착된 정책을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기에 이를 극복할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너무나 존경하는 우리 의원님.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의원님.
살면서 그런 분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음이 행운이었다. 정말로...
의원님이 현재 모시는 의원님께는 이야기 하지 말고 박사원서를 넣고, 붙고 난 후 말씀하라고 하셨는데... 그래야겠지?
아... 박사. 붙어도 문제 떨어져도 문제.
어찌 되겠지 뭐.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대학원은 생각도 안했었다.
그래서 첫 직장이었던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합격을 한 후 김연명교수님께 합격소식을 전할때 "1년만 일하고 대학원 와라!"라고 하셔서 의아했었다. "난 공부 더 안할껀데..."라고 말이지.
그런데 삶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 법.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딱 1년 15일 동안 일한 후 정규직을 때려치고 월급을 반으로 줄여 인턴 신분으로 국회에 복귀하고, 국회에 복귀해서 6개월 쯤 일하다 보니,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국정감사 중 사무실에서 몰래 연구계획서와 학업계획서를 쓰고...
국정감사를 마친 후 마침 사회보장학회에서 하는 '노인장기요양제도 토론회'가 한양대에서 하루종일 있어서, 토론회 참가한다고 한양대로 가서 충엽이 학생증 빌려서 하루종일 한양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공 원서를 봤었다(울 과는 대학원 입시 때 원서 번역 시험을 본다).
그렇게 하루 공부하고 번역시험을 보고 면접을 봤고, 운 좋게도 합격을 했다.
이후 한학기 동안 국회 인턴일과 일반대학원 수업을 병행 했고...
석사 2학기 때 대선과 총선(석사 3학기)을 앞두고 휴학과 사직의 기로에 섰을 때, 사직을 하고 풀타임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 신문사에서 편집위원 활동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면서...
그렇게 3학기 동안의 풀타임 학생 생활을 마친 후, 논문을 쓰고 있던 2009년 3월 국회 모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다. 사람을 뽑으니 원서를 넣어보라고... 그렇게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국회 복귀 후 한달간 매일 밤을 새서 논문 중간심사를 마쳤고... 그리곤 논문을 포기했다.
새로운 의원실에서 일을 하는데... 논문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논문에서 손을 놓고 있다가. 2011년 다시 논문을 잡았다. 논문 중간심사까지 마쳤던 그 논문은 데이터(2008년 데이터) 때문에 버리고 새로운 주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 그렇게 1년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논문을 써서 2012년 2월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원없이 논 2012년.
하지만 반년 정도 놀고 나니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써버리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무언가를 다시 채우고 싶다는 생각.
고민 끝에 박사과정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공부를 마치자는 다짐.
석사와 달리 박사는 2명 이상의 추천서를 내야 했다.
지도교수님, 그리고 다른 교수님 한분. 18대 때 모셨던 의원님.
석사 때와 마찬가지로, 박사 원서 모집 시기 또한 국정감사와 겹쳐서 사무실에는 차마 박사원서 접수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원서를 넣었다.
18대 때 모셨던 의원님께 연락을 드리니, 너무나 흔쾌히 "집으로 와!"라고 말씀해 주신 의원님.
그렇게 일요일 오전에 의원님 댁에 가서 박사 추천서를 받아왔다.
의원님이 써주신, 애정이 담뿍 담긴 추천 글.
***는 지속적으로 사회복지정책과 현장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면서 연구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원들을 탁월하게 보좌하여 우수의원으로 인정받게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리하게 아이템을 찾아내고 대안을 마련하면서 분석하는 능력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가 깊이있는 학문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복지정책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직장을 다니면서 수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의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 그리고 현장과 밀착된 정책을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기에 이를 극복할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너무나 존경하는 우리 의원님.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의원님.
살면서 그런 분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음이 행운이었다. 정말로...
의원님이 현재 모시는 의원님께는 이야기 하지 말고 박사원서를 넣고, 붙고 난 후 말씀하라고 하셨는데... 그래야겠지?
아... 박사. 붙어도 문제 떨어져도 문제.
어찌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