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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폭식(김재영)

by 하트입술 2010. 2. 1.



최근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을 보면~

단지 "제목"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은 듯...

이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옆자리 비서관이 빌려온 책을, 뺏어서 먼저 읽어버린~ㅋ

꽃가마배, 앵초, M역의 추억, 달을 향하여,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 폭식, 십오만원 프로젝트
총 8개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

"빌딩 밖으로 나오자 뜨겁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전신으로 훅 밀려온다. 사내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홍에게 달려든다. 누군가 갈라진 목소리로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이다. 회사는 책임져라'라고 외친다. 이어 항의의 목소리가 거칠게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권한을 가진 나에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중의 한사람, 탈모가 심하고 얼굴이 바짝 마른 중년사내만 빼고, 확성기를 손에 쥔 사내는 내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았지만 끝내 나를 알아보지는 못한 듯 했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반대방향으로 가버린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눈빛이다.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와 입사동기이고 한때 해고자 복직싸움을 함께했던, 눈빛이 강한 반면 유난히 잘 웃던 최형. '저 친구.... 마른북어처럼 심하게 말라버렸군. 내 몸뚱이가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비대해진 것처럼'하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십년 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함께 해고된 우리는 각각 다른길을 택했다. 해고자 복직싸움에 적극 뛰어든 그와 일찌감치 포기하고 새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누빈 나, 0.7평 감옥으로 추방된 그와 망망대해 같은 외국으로 추방된 나. 어쩌면 이리도 다른 모습으로 망가진걸까. 내가 맥도날드 햄버거와 튀긴 감자, 기름진 이딸리안 피자 따위를 씹으며 지구를 뱅글뱅글 도는 동안 그는 0.7평에 갇힌 채 제자리뛰기로 팔다리를 풀며 배급된 음식으로 연명해 왔음이 분명하다. 내가 유령이 되어 돌아올 동안, 그는 여태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단 말인가. 뜨거운 햇볕이 따갑게 뺨으로 쏟아낸다."

폭식의 한 부분...

다국적 기업의 직원으로... 옛 동료와 마주선 한 남자...
본인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본사를 위해 다국적 기업의 편을 들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했던 한 남자...

IMF 이후 넘쳐났던 실직자들,
그들이 어떻게 다시 사회에 적응해 갔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소설...

현실을 너무나 있는 그대로 반영해서,
더 섬뜻하기도 한...
그렇지만 참 잘 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