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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란 이름만 보고 빌렸던 소설 <풀밭 위의 식사>
그런데 이번에 고른 <풀밭 위의 식사>는 예전 작품들 보단 재미가 없었다.
어두운 면이 더 많은 여자 누경.
그 여자를 사랑한 기현.
누경이 사랑한 누경의 사촌오빠 서강주.
사랑의 밝음 보다 사랑의 어두움이 더 많이 담겨 있었던 소설.
"삶이 고역이다."
얼마 전까지는 삶이 고해다, 라고 했는데, 고역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가슴 깊숙이 치고 들어왔다. 매일 삶의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고대왕국처럼 삶의 변방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다. 적이 쳐들어 오거나,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야 하거나 그도 아니면 내부의 한가운데서 난이 일어났다. 평정을 이룬 날은 짧고 간신히 이룬 균형은 이내 흔들리고 변방의 전쟁은 또 다시 발발하고 성들이 무너진다.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부침을 계속하는 나와 나의 접경지대, 타인과 나의 접경지대, 나와 세상의 접경지대. -59~60 page
삶이 고해다. 삶이 고역이다.
요즘 매일 매일 떠오르는 생각.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건지 원.
보통 누경은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마련하는 식으로 썼다. 띄엄 띄엄 쓰기 때문에 일기장들은 대개 반쯤 채워지고 나머지는 백지로 빈 채 다음해의 일기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데 그 노트는 그해 늦가을에 새로 마련되었고 날짜도 거의 뛰어넘지 않은데다 어느 날은 두 번 세번씩 기록을 했다.
말하자면, 그 시기에 매우 당혹스러운 어떤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것이다. 어쩌면 갑작스럽게 누경과 세계가 와락 겹쳐지면서, 그 중심에 부상한 시간의 찬란한 빛을 붙잡고 싶었느지도 모른다. 어쩌면 망각이 두려워졌을 만큼 갑자기 발생한 그 사건의 영원성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만남과 만남 사이의 기다림을 메우기 위하 절박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한 번의 경험을 수시로 재생해 만남을 증폭시키고 경험을 심화하는 거울 유희 같은 것이다 혹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뭔가 끼적여 씀으로써, 현실에서 떠나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기록을 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읽을까봐 무서워 하면서, 나는 쓴다. - 72 page
누경이 나와 비슷했던 부분.
해마다 일기장을 사고, 그 일기장에 띄엄띄엄 일기를 쓰고...
그래서 매년 일기장은 반쯤 빈 상태로 다음해의 일기장으로 넘어간다.
삶의 궤적이 일정하진 않지만 뜨문뜨문 적혀있는 나의 일기장.
즐거운 일 보단 힘들었던 일이 더 많이 적혀있지만...
지나고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닌 일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지금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으리라. ^^
"힘들 땐 어떻게 하세요?"
"그냥 견뎌. 끝까지 견디는 거야."
인생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듯 말했다. 누구나,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그럴까? 서강주도 고독해 보였다. - 93 page
급한 성격.
제일 못하는 일 중 하나가 '견디는'거다.
물고 늘어지는건 잘하는데.
왜 가만히 견디는 걸 못하는 건지.
견딤이 필요한 시기도 있는데~
그 때마다 난 먼저 뛰쳐나가버리곤 했던 것 같다.
이번엔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견딜 일이 없는 삶을 살긴 힘든걸까?
함께 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기현과는 아무 문제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신이었고 집도 있었다. 안정된 직장도 있고, 술도 취하도록 마시지 않고 성격도 밝고 기호도 좋았다. 음악과 와인과 여행과 친구들...... 얼굴도 밉지는 않았고 야위긴 했지만 체격과 자세도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엌일을 잘하고 다정다감하고 부지런하고 예의바르고 처신도 잘했다 기현 같은 남자야말로, 평온한 삶을 약속하는 사람이고, 이른바 여자에게 좋은 남자일 것이었다. - 215 page
함께 사는게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남자가 있다. 그런데 난 그런 남자 보다는 함께 살면 힘들 것이 뻔한 사람이 더 좋다. 일에 미친 남자, 열정이 많은 남자. 그런 남자들은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남자들한테 끌린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난 어떤 남자를 원하는지 생각해봤더니.
난 평온한 삶을 약속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금 더 액티브한 인생을 사는 사람을 원하더라.
평온한 삶을 약속하는 사람을 원했더라면, 그냥 양군과 결혼했겠지.
그럼 정말 평온하게 화목하게 살았겠지...
하지만 양군과의 이별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일이다.
우린 너무 달랐으니까.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변할까?
결혼하고 얘까지 낳은 친구들을 보면, 저 친구들은 삶에서 이룰 것(?)들을 다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결혼도 해야 하고, 얘도 낳아야 하고~
앞으로 몇년 사이 삶이 많이 바뀔 것 같다는 느낌.
일년 후, 혹은 이년 후.
난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