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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새 책 <사랑의 기초: 연인들>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보고 정이현의 현실적인 글에 반한 후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된 그녀~
그녀가 알랭 드 보통이랑 같은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글은 기대 이상이었다.
요즘의 연애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그래서 너무 아프기도 했던 책.
이 책 덕에 오래간만에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당.
언제나 처음이 있다. 불가항력적으로 모든 사건의 맨 앞에 도사린, 얼떨결에 뜯어버린 일월 달력 같은 시작의 예감들.
준호와 민아는 각각의 방식으로 그 날을 기억했다. - 13 page
사랑을 만나던 날.
각각의 기억.
내 기억과 그들의 기억이 동일했을까?
누굴 만나든.
첫 만남의 기억은 참 오래 가는 듯.
최근의 만남.
그와 내가 잘 된다면, 두고두고 이야기할 만한 사건들~
앞으로 어찌 되려나?
오늘 만나게 될 여자는 그보다 두 살 어리다고 했다.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그 보다 두 살 어린 미혼 여성은 몇 명이나 될까. 수십만 명에 이를 터였다. 수십만의 여자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한 명이라니. 세상에. 그 단 한명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를 기대하다니!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애인을 사귀려는 목적으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괴상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차라리 지하철 같은 칸에 탄 아가씨와 사귀게 되는 일이 쉬을 것 같았다. 아니, 우연히 한입 베어 문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죽은 생쥐의 꼬리털이 발견되어 수억 원의 보상금을 타는 일이 지금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아, 어리석은 희망이여. 그는 자책했다. - 16 page
소개팅이나 선으로 누군가를 만나긴 참 어려운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 이후엔 거의 소개팅으로 남자친구를 만났던 듯...
"수십만의 여자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한 명이라니" 이 말에 초초초공감.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오랜만에 나갔다가 각자의 이상형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한 여자 동창이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아주 구체적인 요건들을 읇기 시작했다. 첫째, 키가 최소한 178 센티미터는 넘어야 하고 둘째, 나보다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셋째, 양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안정된 가정의 출신이었으면 해. 그 말을 듣는 남자들 모두가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빈정대고 싶은 욕구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민아가 "나는 그냥 착한 사람이면 돼"라는 모범답안을 던진 건 남녀로 갈려 어색해져버린 분위기를 무마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20 page
이상형.
난.
첫째, 열심히 살고, 비젼이 있는 사람이었음 하고
둘째, 양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안정된 가정의 출신이었으면 하고
셋째, 키는 175 센티미터 이상이고 종교가 같은 사람이었음 좋겠다.
이거... 너무 속물 같은건가?
마침내 여름이 끝나가는 것 같았다. 여름 동안 그들은 함께 여러가지 것들을 했다. 각자의 친한 친구에게 서로를 소개했고,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의 온도를 알게 되었고, 맥주를 도합 삼만 씨씨쯤 마셨고, 키스를 했고, 사랑한다고 말했고, 같이 잤다. 아직 함께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 133 page
연인이 되면 하는 것들.
그들은 일부일처의 혼인제도에 소속되지 않은 관계였다. 물론 일부일처를 모방한 배타적 관계를 맺겠다는 무언의 약속에 동의한 결과임에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다. 서로의 사랑을 보증금처럼 걸었지만, 어떤 공식 서류에도 자필서명하지 않았고 어떤 사유재산도 공유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결국 타인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면, 자유인이었다. 개인의 책임감과 상호신뢰 따위의 보험신탁의 경영이념 비슷한 소리를 들먹이는 것 말고는 상대의 배신을 추궁할 어떤 권리도 없었다. - 206 page
헤어져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관계.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웠다가, 완전히 모른느 사람이 될 수 있는 관계. 연.인.
아... 정이현이 너무 좋다. 그의 소설이 너무 좋다.
언젠가 나도 정이현 같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하는 연애를 있는 그대로 써보고 싶다.
내 연애담을 쓰면 될까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