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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최저생계비 체험

[최저생계비 8일차] 지켜보는 눈들...

by 하트입술 2010. 7. 9.
벌써 최저생계비 체험 8일째 입니다. 이제 1/4 정도가 지났네요. 그런데 돈은 1/2 밖에 안 남은... 남은 3/4를 1/2로 살아야 한다는.. 심지어 교통비와 통신비가 포함이지 말입니다.

<7월 8일 가계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오늘 과감히 친구 생일선물을 위한 지출을 했습니다. 몇년간 서로의 생일을 챙겨오던 친구들인데, 제가 최저생계비 체험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의 생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어서 말이죠. 이러니 최저생계비를 벌써 1/2나 써버린 것 같긴 하지만,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위하여, 지인들의 경조사는 꼭 챙기려 합니다.

오늘 아침은 계란 2개로 때웠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국회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깐풍기, 계란국, 양상치샐러드, 깻잎지. 오늘도 점심식사는 다른 의원실 친구들과 함께! 평소엔 주 5일 중 저희 의원실 사람들과 1~2번, 다른 의원실 사람들과 1~2번, 업무상 점심약속 1~2번인데 이번주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다른 의원실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있네요. 업무상 점심약속이면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데, 이번주는 업무상 점심약속 조차 없는... 6월달엔 임시국회기간이라 거의 점심은 계속 업무상 점심약속이었는데, 그 약속들이 지금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들기도 합니다.


                                                                <도서관 식당 점심메뉴>

도서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함께 점심을 먹은 친구들과 후생관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커피를 사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극구 사양을 하며 걸어갔죠. 그렇게 후생관에 도착! 친구가 멀 주문할꺼냐 묻기에 "난 안먹을래!"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제도 커피를 마셔서 지출이 컸는데, 오늘 까지 마심 안 되는거죠. 거기다 오늘은 친구 생일 선물 비용도 지출해야 하는데...

친구들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2개 시켰고, 저는 몇 입 빼앗아 먹었습니다. 비용을 지출하면 안되니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의원실 동생이 절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슬기언니 최저생계비 체험한다는데... 아이스트림을 먹어?" 혼자 이런 생각을 했던 듯!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저희 의원실 동생들이 나타났습니다. "언니!! 머 먹어!!" 옆 테이블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저희방에 제보를 한 것이지요.

전 요거트 아이스크림 몇입 먹은 죄 밖에 없는데... 그걸 누군가 지켜보고, 또한 제보까지 하다니!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최저생계비 잔액을 네이트온 대화명으로 해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는 것을 알 것이라 생각은 했으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보까지 할 줄은 몰랐던거죠. 심지어 제 주변인들은 제가 가계부를 쓰는 것 보단, 본인들이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며, 제대로 안하면 참여연대에 제보하겠다고 협박까지 합니다. 머... 관심을 보여주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부담이 더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저녁식사! 오늘 저녁은 친구 생일이라 모임이 있었습니다. 동네친구들 5명 모임인데, 벌써 몇년째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보통 25,000원씩 모아 선물을 하고 생일자가 식사와 차를 쏘는게 모임의 전통(?)이라면 전통인데요. 오늘은 생일을 맞은 친구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작년 11월에 결혼을 하여 현재 신혼을 만끽 중인 친구의 집은 국회의사당역에서 딱 한정거장 거리인 당산역!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바로 친구네 집으로 직행을 했지요. 도착했더니 이미 친구네 집에 와 있는 친구도 있고 아직 도착 전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일의 주인공인 친구는! 열심히 저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임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러 온 칭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저희는 피자나 치킨 같은거 시겨줘도 감지덕지인데, 입덧을 하면서도 묵은지김치찜을 해주는 친구. 친구 덕분에 오래간만에 정말 맛있게 집밥을 먹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점심에 집밥을 먹은 후 처음 먹어보는 집밥이었습니다.

                                           <친구의 요리솜씨! 마지막 피칸파이는 생일 케익 대용>

정신없이 식사를 한 후 두어달 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참 담소를 나눴습니다. 회사 이야기, 결혼 이야기, 연애 이야기 그리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온라인 체험"이야기까지! 제가 이 체험을 한다고 하니, 친구 한명이 본인도 체험을 신청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는 왜 내 주변엔 남들이 절대 하지도 않는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2명이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웃습니다. 끼리끼리라고 비슷한 부류니깐 오랫동안 이렇게 친구로 지내고 있겠죠. 오늘 만난 친구들은 기본 15년 이상씩 만나온 친구들이니까요. 어떤 친구는 초등학교 때, 어떤 친구는 중학교 때, 또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 때 각각 다른 시기에 만나서 각기 우정을 쌓아오다가 함께 뭉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친한 친구의 친구, 친한 친구의 친구 이렇게 뭉쳐치게 되니 이젠 5명이 똘똘 뭉쳐버린거죠.

실컷 먹고 한참 떠들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결혼을 한 친구를 제외한 저희들의 집은 강동구 명일동. 명일동 촌년들이 친구네 집 간다고 저~ 먼 영등포구 당산동까지 놀러갔더니 집에 갈 것이 막막해 집니다. 평소 저는 명일동에서 여의도를 출퇴근하는지라 그 거리를 그렇게 멀게 느끼진 않지만, 명일동에서 역삼역 등 가까운 거리로 출퇴근 하는 친구들은 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지나 봅니다. 그 전에도 친구네 집에 왔다가 집에갈 땐 4명이 함께 택시를 타고 명일동으로 돌아가곤 했었습니다. 택시를 타면 불과 25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올림픽대로 타고 휭휭~). 그런데 지금은 제가 최저생계비 체험중이기 때문에, 만약 제가 택시를 탄다면 저 또한 1/N을 해서 택시비를 내야하는거죠. 그래서 전 택시를 안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갈 테니 친구들 보고는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 그럴수는 없다며 함께 지하철을 탑니다. 저 때문에 친구들까지 고생하는 것 같아, 친구들을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싶었지만, 그녀들의 눈빛을 보니 절대 택시를 타지 않을 기세입니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잘 다니지 않는 5호선. 덕분에 환승역에서 저를 비롯한 4명은 상일동행 5호선을 타기 위해 20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평일에 직장에서 멀리 당산까지 친구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친구들, 게다가 택시를 타서 각자 7,000원씩 내면 편하게 금방 집까지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함께 하겠다며 늦은 시간 함께 지하철을 타준 친구들. 이들이 곁에 있어 다시 한번 힘을 내봅니다.

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와 최저생계비 체험에 임하는 체험자의 자세에 대하여 토론을 했습니다. 오늘 저희 사무실 보좌관님께서 저보고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넌 최저생계비 체험을 이벤트로 하는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전 머리가 살짝 띵 해졌습니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한답시고 너무 디프레스 되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업 상태를 유지했는데, 그 모습이 보좌관님께는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는 사람 치고는 너무 밝았던거죠 요즘 제 모습이. 원래 최저생계비 체험을 할 땐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동일하게 해야 하는데, 전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타박을 하신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또 그것에 대하여 친구와 토론을 해 보았습니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는 체험자의 자세는 무엇인가?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며, 무조건 아껴서 30만원 이하로 지출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혹은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며 지출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혹은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아끼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제 판단은 세번째가 젤 맞다는 것이었고 친구 또한 그것에 동의했습니다.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는 의미는 그들에 대한 공감의 의미도 있지만, 이 정책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아끼는 것 보단 생활을 유지하며 진행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최저생계비 체험을 이벤트로 하는 것 같아!"라는 이 말이 뇌리에서 가시지를 않습니다. 현재 전 최저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습니다. 물건을 살 때 질 보다는 가격 먼저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예전만큼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매일 매일 여러가지 깨달음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더 색다르고 재미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23일 동안 전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