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의 단편 모음 <픽업>
사실 단편집인지 모르고 빌렸는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더글라스 케네디만의 흡입력 있는 글은 여전한!!
사실... 이 책을 국회도서관에서 빌린 후 집 혹은 사무실 어디에 뒀는지 모른 채 시간을 흘러보내다 연체가 된 후 새책을 사서 국회도서관에 반납한 후 책을 발견해서 읽었다. 결국 의도치 않게 소유하게 되어버린 책.
내 책상 서랍에도 그런 사치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손목에 카르티에 로드스터 시계를 차고 있었고, 내 주머니에는 듀퐁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내 슈트(이제 보니 슈트에도 커피가 튀어 있었다)는 랄프 로렌이었고, 구두는......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으로 규정된다. 돈이 있으면 그만큼 개성을 더 드러낼 수 있었다. - 137page <전화> 중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무리해서 명품백을 사고, 외제차를 사는...
2013년 4월, 2003년식 스펙트라를 구입했다. 운전연습 용 중고차. 그리고 그 차를 마음껏 신나게 몰고 다녔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사람들이 차를 바꿀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철판이 얇고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관을 타고 다닌다"며 차를 바꾸라던 친한 선배. "(자기보다)월급도 많으면서 차를 왜 안바꾸냐?"는 후배.
나는 내 은색 스펙트라 구루마(차 이름)가 창피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내 주변 몇몇은 나의 구루마가 창피했었나보다. 그렇게 1년 가량 주변인들의 잔소리를 듣다가 중고차 구입 후 2년만에 새차로 바꾸며, 첫 차로 정이 많이 든 구루마를 친구에게 넘겼다.
그렇게 2016년 5월 30일. 새로 온 나의 차 구르릉. 두번째 차라 그런지 첫 차 만큼 정이 안 쌓인다. 훨씬 삐까뻔쩍함에도 불구하고 차를 산지 1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어색한 내 차 구르릉.
돈이 개성을 다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차에 한해서는 말이지... 돈 보단 정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모두가 그것을 잊고 사는 듯.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오래 전 그녀는 결혼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났고, 그 후로는 전혀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건 그녀와 나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친구들이 있었고, 파리에 사는 이방인으로 공통의 인맥이 잇었다.
우리는 거리에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 존재 안으로 들어와 한동안 머물다가 상황이 바뀌면 홀연히 사라진다. 그때부터 우리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고, 그때껏 내 존재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 195~6 page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
"누군가 내 존재 않으로 들어와 한동안 머물다가 상황이 바뀌면 홀연이 사라진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던 이들.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내게는 로맹의 말이 복에 겨운 한탄으로 들릴 뿐이었다.
아무려면 나보다 불만스러울까?
이봐, 너에게 온갖 의무를 받아들이라고 협박하며 머리에 총을 겨눈 사람은 없잖아. 누가 너에게 제니와 결혼하라고 강요하기라도 했어? 공허하기 그지없는 교외 주택가에 집을 사라고 강요한 사람이라도 있어?
우리는 주어진 삶이 못마땅하다며 늘 발을 동동 구르고 비명을 지르지만 사실 모든 게 자업자득일 뿐이었다.
'당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야' - 221page <가능성> 중
마지막 한 문장 때문에 뜨끔!
나는 그녀에게 달리기를 배웠다. 그녀는 마라톤 마니아로 틈만 나면 달렸다. 그녀는 도전을 즐기고, 뭔가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걸 좋아하고, 인내심을 시험해보길 좋아하고, 극한의 고통을 즐겼다.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그녀가 하는 모든 일 앞에 수식어로 붙일 경우 매우 적절한 표현이 되었다.
마라톤 대화, 마라톤 섹스, 마라톤 드라마, 마라톤 화풀이, 마라톤 애정 표현, 마라톤 분노..... - 230page <실수> 중
도전을 즐기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인내심을 시험해보길 좋아하고, 극한의 고통을 즐기는 나. 그런데 남자친구는 이런 내 모습이 싫은가보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마다 "무리하지 말라"는 그.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걸 어떻게?! 너무나 공감갔던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