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스깐은 "생전 처음 만난 여성과 맺은 채 7분도 안 되는 성관계까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믿자면, 디알로가 샤워실에서 막 나온 배불뚝이 육십대 남자의 알몸을 보자마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다는 설명을 믿어야만 한다".
이후 다른 여성들도 스트로스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나섰다. 그중 한명인 젊은 프랑스 저널리스트는 그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말했다. 스트로스깐은 프랑스 법에 저촉되는 매춘을 알선한 어느 섹스파티 일당과도 연루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쓴느 현재, 그는 '가중 매춘 알선 행위'로 고발될 참이다. 한 성노동자가 제기한 강간 고소는 취하되었지만 말이다.
결국 중요한 점은, 어느 가난한 이민자 여성이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남성 중 한명의 경력을 뒤엎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 경력을 진장에 끝장냈어야 마땅한 행동을 이제야 사람들에게 노출시켰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겠다. 그 결과 프랑스 여성들은 자기 사회의 여성 혐오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나피사투 디알로는 IMF 전 총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이겼다. 상당한 보상금이 약속된 듯한 합의 조건 중 하나는 침묵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시작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 86~87 page
그물을 짜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 세상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 아버지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호명한느 것, 직선만이 아니라 그물을 그리는 것, 청소부만이 아니라 제작자가 되는 것, 침묵당하지 않고 노래하는 것, 베일을 걷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내가 빨랫줄에 너는 현수막들이다. - 118page
내게 희망의 근거는 단순하다. 우리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모른다는 것, 세상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꽤 자주 벌어진다는 것. 비공식적인 세계사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헌신하는 개인들과 대중운동들이 역사를 만들 수 있으며 만들고 있다는 것.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길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 -134 page
울프는 <등대로>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으로서는 그녀는 다른 누구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 혼자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주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이었다. 생각 하는 것.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조용히 있는 것. 혼자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는, 모든 확장하고 반짝거리고 소리내는 것들은 증발했다. 그녀는 자못 엄숙한 기분을 느끼며 자기 자신으로 쪼그라들었다. 쐐기 모양을 한 어둠의 핵으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줄어들었다. 그녀는 계속 뜨개질을 했고, 계속 꼿꼿하게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자기 자신을 느꼈으며,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떨어낸 자아는 더없이 기묘한 모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삶이 일순간 그렇게 가라앉을 때, 경험의 폭은 무한해지는 것 같았다. ... 그 아래는 온통 캉캄하고 온통 퍼져나가고, 헤아릴 수 없이 깊다. 그러나 우리는 간간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그 모습으로 우리를 본다. 그녀의 수평선은 그녀의 무한인 것 같았다. - 149~150 page
허먼은 강간, 아동 성추행, 전쟁 트라우마를 두루 다룬 <트라우마>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비밀과 침묵은 범인의 첫번째 방어선이다.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철저히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게끔 만들려고 애쓴다. ... 모든 잔혹행위에는 우리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똑가은 사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느니,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과장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라느니, 심지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도 나온다. 범인이 유력한 인물일수록 현실을 호명하고 정의하는 능력이 크기 마련이라, 그의 주장이 더 철저히 득세한다.
집단으로서 여성은 신뢰할 만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짓된 강간 고발이 진짜 문제라는 암시는 개별 여성을 침묵시키고, 성폭행에 관한 토론을 회피하게 만들고, 남성을 주된 피해자로 부각하는 도구로 쓰인다. - 169~170 page
'성적 권리의식'이라는 표현은 2012년 보스턴 대학 하키팀의 성폭행과 관련해서 널리 쓰였는데, 그보다 더 앞서 쓰인 경우도 있다. 내가 이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아시아의 강간 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도한 BBC 뉴스에서였다. 조사에 따르면, 많은 경우 강간의 동기는 남자가 여자의 욕망과는 무고나하게 자신이 그녀와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권리가 여자의 권리에 앞선다는 마음, 혹은 여자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여자가 남자에게 섹스를 빚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게 퍼져 있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요즘도 여자들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어떤 말이, 옷차림이, 우리의 모습 자체가, 우리가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남자에게 욕망을 불러 일으켰으므로 응당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적,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노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다른 여자들이 자신에게 했거나 하지 않은 일을 갚아주기 위해서 엉뚱한 여자를 강간하거나 처벌해도 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 193~4 page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강간문화, 성적 권리의식 등은 많은 여성들이 매일 접하는 세상을 재정의하고 그런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어주는 언어도구들이다.
19세기의 지질학자 겸 미국지질조사국 국장이던 클래런스 킹과 20세기 생물학자들은 느리고 조용하여 상대적으로 정체된 시기가 이어지다가 간간기 격동적인 변화의 시기가 끼어드는 패턴을 묘사하기 위해서 '단속적 평형'이라는 용어를 썼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단속적 평형의 과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속성에 관한 대화들은 뜻밖의 사건이 가하는 압력을 받아서 어느 순간 확 전진하곤 한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이야기를 바꾼다. - 196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