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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헌팅 vs 지하철 헌팅

by 하트입술 2014. 5. 23.

출근 후 인터넷 서핑 중 '버스 헌팅'과 관련된 글을 하나 봤다. 어떤 남자가 버스에서 본 여자에게 전달했다는 A4 용지. 어찌 보면 스토커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성이 좀 웃기길래 대화중이던 *비서관에게 보여줬다.

http://cafe.daum.net/WorldcupLove/Knj/1690001?svc=live_story&q=%B9%F6%BD%BA%BF%A1%BC%AD+%BE%B2%B4%C2+%BA%B8%B0%ED%BC%AD&DA=IMGO

"너야?"

"난 버스 안타자나!"

"뭐~ 그렇다 치자", "남 얘기 인 척~"

어라! 그러고 보니 나도 저런 '짓' 한 적이 살면서 딱 한 번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여름.
매일 아침 7시 52분에 명일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서서 오는 멀끔한 청년이 한명 있었다.
고덕역에서 타서 앉아서 오지 못하는 듯한 모습. 키가 크고 뽀야니 양복이 매우 잘 어울리는 슬림한 몸매의 소유자. 그를 보자마자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젤 친한 친구인 지*이의 이상형!!
친구가 좋아하는 남성형의 남자를 매일 지하철에서 마주치게 된거다.

매일 볼 때마다 "저 사람 지*이 이상형인데.."란 생각을 하다가, 지*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니 이상형인 남자 마주친다!"

"야야! 다음에 내 명함 그 사람 무릎에 놓고 내려봐~"라면서 자기 명함을 나한테 준 그녀.

그렇게 '지하철 헌팅(?)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었다.

친구에게 친구의 이상형인 남친을 만들어 주겠다며, 쪽지도 하나 써서 친구 명함과 같이 전달을 하려 한 것!
(내가 악필이라 글씨는 다른 의원실 친한 언니가 써줬다. 당시 우리방 동생들은 "언니도 남친 없으면서 언니 친구 땜시 뭐하는 짓이야"라며 지지는 커녕 구박을 했다. ㅠ.ㅠ)

"놀라셨겠지만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제 친구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라는 내용을 담은 쪽지와 친구의 명함 그리고 내 명함(내가 당사자가 아님을 알리기 위함?!)을 구비한 채 다가온 D-Day.

혼자 헌팅을 감행하기엔 용기가 살짝 부족하여, 굽은다리역에서 지하철 타는 창*오빠 보고 내가 타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서 내가 쪽지 줄 때 옆에 있어 달라고 하고(내가 타는 시간에 가면 오빠가 평소보다 약간 늦는 시간이었지만) 5호선에서 그 사람을 찾았는데, 왠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 '그 남자'가 지하철에 없었다.

매일 타던 맨 앞칸에 없길레 세번째 칸 까지 뒤졌는데도 없던 그 남자.
그 이후 3일 정도를 창*오빠랑 같이 지하철을 타서 남자를 기다렸음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쪽지와 친구의 명함을 지갑에 넣고 다니던 어느날!
D-Day로 삼았던 날이 10일 정도 지난 후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난 쪽지를 주기로 다짐을 한 후 을지로 4가에서 내리는 그 남자를 쫒아서 내렸다.
앞서 가는 남자를 쫒아가서 어깨를 툭툭 치곤 전달한 쪽지와 명함.

"저기 이것 좀 봐 주세요! 제 친구랑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요..."라며 준 쪽지, 친구의 명함 그리고 내 명함.

"여자 친구 있으세요?"란 내 물음에, "여자친구는 없는데..."라는 답변을 듣고 다시 5호선을 타고 룰루 랄라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지*이에게 그 소식을 전한 후 지*이 혹은 나에게 연락이 올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후 6시쯤 도착한 장문 메세지 3개.

"지하철에서 맨날 졸았는데 잘 봐주셔 감사하고 주절주절."
"여자친구는 없으나 소개팅을 해서 만나는 여자가 있어서 주절주절"
"잘 봐주신 것은 감사하나 친구분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 주였던 3개의 문자.

그 문자를 그대로 지*이에게 토스하니, 문자보니 더 탐이 나는 남자라며 안타까워 하던 지*.

그렇게 '지하철 헌팅'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되었고, 그 날 이후 그 남자를 명일역 7시 52분 지하철 맨 앞칸에서 볼 수 없었다. 아마도 나를 피해서 다른 칸이나 다른 시간에 탔던거겠지... 크핫!

그리고 며칠 후 태*랑 술을 마시다가 '지하철 헌팅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더니, 구글에 핸드폰 번호 검색하면 이름 나올 수 도 있다고 한번 해보라길래 바로 검색을 해봤다.
(지*이가 번호 한동안 지우지 말아보라고 해서 안 지우고 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번호가 없다.)

그랬더니 지하철 남의 번호가 검색이 되었는데, 이름이 꽤 특이하더라...
지하철에서 봤을 때 내 또래로 보여서 싸이월드에서 1981년생으로 그 이름을 검색하니 바로 나온 미니홈피.

알고보니... 그는 나랑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푸하하하하!

일촌평을 보니 아는 이름이 가득.
초등학교 동창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동창까지 일촌평 써놓은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내 친구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위에서 두번째 일촌평을 써놨던 녀석이 어릴적부터 함께 자란, 엄마들끼리도 엄청 친한 친구였다는 것. 

지*이가 번호를 남겨두라고 한 건, 시간이 좀 지난 담에도 자기 남자친구 없으면 다시 한번 연락해 보자고 하면서 남겨두라고 했던건데... 내 명함까지 준 상황에서 한번 더 연락했음 완전 "동네 미친년"이 될 뻔한거다.

흔치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지하철 남에게 다시 연락을 했으면 그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엄마한테 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갈 수도 있었던 상황.
(한 동네에 오래 살면 이런 위험성이 좀 있다)

여하간 그렇게 '지하철 헌팅' 에피소드가 지나갔다.

벌써 5년 전 사건.

그 후 내 베프인 지*이는 수많은 소개팅과 선을 봤고, 은*이가 해준 소개팅에서 현 남편을 만나서 연애하다가 결혼해서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난?! 중간중간 연애 하다 말다 하면서 아직도 솔로로 늙어가고 있을 뿐.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지*이 이 녀석은 난 자기를 위해 지하철에서 헌팅까지 했건만!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주말에 소개팅 내놓으라고 좀 쪼아야겠다. ㅋ

이젠 똘아이짓 그만하고 살아야지. 음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