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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by 하트입술 2011. 9. 13.
서른잔치는끝났다(창비시선121)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시
지은이 최영미 (창작과비평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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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말 <서른, 잔치는 끝났다>

그간 이 말이 광고 카피인줄 알고 있었다...
많이 들어서 익숙한 그러나 어원은 모르는 말.

국회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서른'으로 검색을 하니 이 시집이 검색이 되었고, 망설임 없이 빌려서 읽었다.

그런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시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시가 아니었다.
시대상이 한없이 묻어있는.. 약간은 운동적인 느낌의 시.

시집에 두번째 시로 실려있는 이 시를 읽고 난 후,
퇴근길 지하철 막차에서 시집을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읽어 내려갔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 보다도 운공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져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하철에 대한 연작 시 6편...

지하철에서 1

                                                최영미

나는 보았다
밥 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지하철에서 6

                                                   최영미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5초마다 세계가 열렸다 닫히는 인생들을
우르르 온몸으로 부딪혀 만난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읽은 시집에 지하철에 대한 시가 있다니...

밥 벌레(사람)들이 순대(지하철)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5초마다 세계가 열렸다 닫히는 인생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군상들에 대한 정확한 묘사.

시인 최영미는, 도시의 삶을 수용하며, 운동권의 마인드를 가지고 시를 쓰고 있었다.
도시에 살며, 도시를 부정하지 않고 그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말이다.
그게 시 전반에 느껴졌다. 도시여자의 시라는 것이...

24시간 편의점

                                              최영미

1

언제든지 들러다오, 편리한 때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시동 끄고 아무데나 멈추면 돼

거기 내가 있을게
꽃가마 없어도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밤새워 불 밝히며 
기다리고 있을게

2

오늘은 어쩐지 불을 켠 채 잠들고 싶다

해거름 술이 올라
내안의, 내밖의
살아있는 것은 내게 맞선다

아침이면 한없이 착해질
욕망도 당당히 자기를 주장하고
철 지난 달력이 넘겨달라 아우성
읽어달라 애원하는 저 거룩한 이름의 시집들
간절한 눈빛 외면한 채
단호히 더듬거리며 형광등 스위치를 내렸다 다시 올린다

3

언제든지 들러다오, 편리한 때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아무데나 멈추면 돼
노동의 검은기름 찌든 떄 깨끗이 샤워하고
죽은 듯이 아름답게 진열대 누운 
저 물건들처럼 24시간 반짝이며
기대리고 있을게, 너의 손길을
여기는 너의 왕국
그저 건드리기만 하면 돼
눈길 가는 대로 그저 한번, 건드리기만 하면 돼

4

오늘은 어쩐지
너를 기다리며 자고 싶다
철 지난 달력도
거룩한 이름의 시집도
뱃속의 덜떨어진 욕망도 한꺼번에 날 배반하는
가슴에 불을 켜고 자는 밤



그래서 더 공감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여자의 시... 서울 여자의 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시...

근 몇년만에 시집을 읽었고...
그 시집을 통해 조금은 감성이 풍부해 진 듯 하다.

그런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시집은...
그저 감성에만 호소하는...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가득 담긴 그런 시집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단지 달달하기만 한, 사랑시를 읽고 싶지는 않았기에...

시를 다 읽고, 김용택 시인의 발문과 최영미 시인의 후기까지 다 읽었다.

김용택 시긴의 발문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완전한 서울여자였던 것이다. 그의 시처럼 말이다. 
최영미는 응큼떨지 않는다. 의뭉하지 않으면 난 척도 않는다. 다만 정직할 뿐이다. 정직하다는 것은 세상을 종합하는 눈이 정확하다는 뜻도 된다. 괜히 이것저것 집적이지 않는다. 내뱉어 버린다. 맛없고 싫어서가 아니라 맛있는 것을 뱉어 내어 그것이 맛이 있었던 것인가를 확인하는 일을 그는 하고 있는 듯하다.  

1994년 3월 30일  초판이 발행되고 2010년 8월 1일 초판 45쇄 발행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집도 참 좋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