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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년행진(Slut Walk) 덕분에 행복했던 하루~!

by 하트입술 2011. 7. 17.

 

                       * 출처: 오마이뉴스

어제 저녁, 야근을 하다가 "'잡년행진, 이런 행사를 아이들이 봐야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6941)라는 기사를 봤다. 처음 기사 제목만 보고는 '달빛시위(http://www.dalbeat.net/)'의 명칭이 '잡년행진(트위터 @SlutWalkKorea, 블로그 http://slutwalkkorea.blogspot.com)' 으로 바뀐 줄 알았다. "달빛 아래,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2004년부터 진행되어 온 달빛시위. 대학원신문사 편집위원 활동을 할 때, 달빛시위에 대하여 처음 알았다. 대학원신문의 사회면을 담당하면서, 기획기사를 준비하던 중 알게 된 달빛시위. 그 이후 달빛시위에 참석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었다.

                       * 현장에서 나눠준 리플렛

꼭 참석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였던 달빛시위가 매년 여름에 열렸기 때문에, 잡년행진이 달빛시위의 변형이겠거니 하며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왠걸? 이건 또 다른 개념의 시위였다. 달빛시위는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여자가 밤 늦게 다니면 위험하다"는 경고가 여성의 일상적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적 메시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진행이 되었다면, 잡년행진은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을 하기 때문에, 성폭행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조롱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다. "밤길"과 "야한 옷". 성폭행의 이유가 되는 것들...



하지만, 성폭행은 "밤길"이나, "야한 옷"과 같은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비이성적 사고"로 발생하는 성폭행을 "여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폄훼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11년 캐나다 토론토 경찰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안전 수칙에 "창녀"처럼 옷을 입지 말라는 조항이 삽입되었다고 한다. 그 문구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여성은 어떤 옷이든 입을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외치기 위해, 4월 3일 토론퇴에서 첫 슬럿워크가 열렸다. 그 이후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주요 도시에서도 슬럿워크가 열렸으며, 7월 16일 4시 우리나라에서도 슬럿워크(잡년행진)가 열렸다.

* 출처: 노컷뉴스

사실, 어제 기사를 봤을 땐 "흥미로운걸? 근데, 내일 5시에 상희 생일파티를 하니 가지는 못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잡년행진과 관련된 여러 멘션을 보고 "생일파티에 조금 늦더라도 들렀다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잡년행진에 참가하였다.

점심에 가족모임을 갔다가, 잡년행진을 가던 도중 싸들고간 옷으로 갈아입고 광화문역에 도착하니 딱 4시 5분. 원효공원을 가니 잡년행진은 이미 시작이 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보도진... 엄청난 보도진에 살짝 놀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가디건을 입은채로...

* 출처: 한겨레

아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는 시위에 홀로 참가하기. 뻘줌함에 뒤에서 머뭇거리다 우선 가디건을 벗었다. 여름에 간혹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입던 코르셋 같이 생긴,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는 나시티. 나시트를 벗고나니 조금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보도진 때문에 그 상태로 앞으로 나서기는 두려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선글라스 혹은 가면을 쓴 여성들! 선글라스는 준비를 못했고, 가면을 쓴 여성에게 물으니, 가면을 팔고 있다고 해서 분홍색 가면을 하나 사서 썼다.

그러고 있을 때, 남근석 퍼포먼스와 아바의 노래에 맞춘 춤이 지나가고~

     * 출처: 오마이뉴스

가면을 사서 쓰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어느 매체인지 물으니 '빅이슈 코리아'란다. 주요일간지면 인터뷰를 거절하려고 하였으나, 보람오빠가 근무하기도 하고, 창간호 부터 매 호 사서 보고 있는 '빅이슈 코리아'이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 잡년행진에 참여하게 되셨어요?"

"어제 밤에 잡년행진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평소 주변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옷을 입는 편인데, 사람들은 항상 제 옷을 가지고 지적을 하더라구요. 단정하지 못하다고 말이죠. 그리고 조금 싸게(?) 보기도 하고 말이죠.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행사에 잡년행진에 참여했어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금은방에 귀금속이 진열되어 있다고, 그 귀금속을 가져가도 되는건 아니잖아요.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다고, 만지거나 성추행, 성폭행을 해도 되는 건 아니에요. 성폭행 후 야한 옷을 입어서 그랬다. 이건 말도 안되는 변명이에요."

"옷 좀 스케치 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리고 서 있는데, 바로 옆에 하얀티를 입은 귀여운 아가씨가 서 있었다. 나 같이 혼자 온 귀여운 아가씨. 트위터에서 보고 혼자 참가했단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등에 "Don't touch"라는 타투를 하고, 행진을 시작했다(그 사이 그 아가씨는 흰티를 벗었는데, 흰티 안에는 하늘색 홀터넥이 숨어있었다).



홀로 온 우리 둘. 우린 여러 여성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광화문역에서 시청역까지 걷는데, 정말 많은 카메라들이 있었다. 가면을 썼지만, 사진 찍히는 것은 조금 불편했다. "사진에 찍힌 모습을 보고, 누군가 내 몸매를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착한 몸매의 소유자였다면 그런 걱정은 안했겠지만, 착하지 않은 몸매를 가졌기 때문에 악플이 조금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보다 더 야한 옷을 입고, 앞장선 멋진 여성들을 보며, 그녀들의 당당함이 부럽기만 한...
잡년행진에 참석했지만, 수동적인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주위에선 항상 "당당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인데, 잡년행진에서 수 많은 카메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위축된 내 모습을 보며, "아직 나는 멀었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대한문 앞. 대한문 앞에서 마이클잭슨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 때도 몸치인 난 뒤로 빠져있었다. 그녀들의 당당한 모습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 출처: 오마이뉴스

그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을 쓰고 그녀들과 함께 하다가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갈 때 나는 선약 때문에 다시 광화문으로 향하지 않고 시청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탔다.

1시간 남짓 참석한 잡년행진.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 같은 여자는 어디든 간다!"

"꼴리는건 본능 때문이나, 덥치는 건 권력 때문이다!"

"내가 벗었지만, 당신이 만질 수 있는건 아니야!"

"우리는 잡년이다. 그래도 내 몸에 손대지마!"


여자건 남자건. 어떤 옷을 입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여자가 야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만지거나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당해도 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래도 된다는 통념이 퍼져있다. 어이없는 통념.
그런 통념을 깨기 위해 여성들이 연대를 했다. 여성단체가 주도한 행사가 아닌.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는 개개인들이 만든 잡년행진. 그래서 이 행사가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단체주도가 아닌 개인주도.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런 행사가 또 열린다면, 그 땐 당당히 앞서 나아가리라!!

정말이지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잡년행진!! 또 언제 열릴까!! ^^

아!! 페북에 사진과 기사를 올렸더니, 페친들이 이런저런 답글을 달았다! 그중 몇개 소개!!

대다수 지지답글이었으나...

권**(여) 미치겠다 ㅋㅋ 당신다워-
배**(여) 멋진 그대로군ㅋ 비오는데 고생했겠슈
윤**(여) 언니 스탈 보면 외국같아요 ㅋ 근데 국회관련업무를 한다니 또 하나의 반전! 
김**(남) 조금전부터 한국판 Slut Walk 뉴스 쏟아지던데요... 와 참여정신~
은**(남) 당당함 멋집니다... 비는 많이 맞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신**(여) 잘했어! 통쾌한 시위!!

신**(여) 아산공장 해고자 방문한 자리에서 의원님 왈, 초등학교 2학년애가 문방구 아저씨한테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했을 때도 교장이 그애가 누구냐 묻길래 왜그러냐 했더니, 걔 행실이 어떤지 알아보려한다 했다고! 초딩2의 행실때문에 순벅한 문방구 아저씨가 성폭행??웃지못할 얘기가 우리사회인식수준..
신**(여) 글게말야. 정신 확 나게 한방 먹여주는 시위. 절도사건 나도, 그러길래 비싼차 좋은 것 왜 사가지고 다니느냐 탓하지 않으면서 성범죄에 대해서는 여자행실 탓을 하는지..
이**(남) 제 머리속 생각부터 돌아보게 하네요! 멋집니다
김**(남) 우리 남자가 숫컷이 아닌 남자인 이유는 동물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솔직히 남자이기에 매력적인 여성의 짧은 옷차림에 시선이 멈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는답니다. 저는 개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보니 요즘 자신을 개로 착각하는 숫컷들이 많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이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하는 여성분께 남자로서 송구스런 마음을 전합니다.

그 중 2개는 반대 답글이었다.

남**(남) 난 누나 생각 반댈세,, 견물생심 이거늘,,
전**(여) 난 야한옷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유발한다는거에 동의해요^^;; ㅋㅋㅋㅋ왜냐면 남자는 시각에약하잖어. 그것을 정당화해서 여자들때뮨에 우리남자들이 이럴수박에없엇다 또 그런것도 안될거같아용

개개인의 신념을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순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한 옷이 성폭행을 정당화 할 순 없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