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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열정의 습관(전경린)

by 하트입술 2011. 7. 7.
열정의습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전경린 (이룸(김현주),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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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혜남 박사의 책을 읽다가 <열정의 습관>이라는 책이 언급이 되었다.

전경린이 쓴 소설. 대학교 때 한 때 그녀의 소설에 빠져서 그녀가 쓴 소설은 다 읽었었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부터 시작해서 말이지...

지금도 한 작가에 필 꽂히거나 혹은 한 주제에 꽂히면 그 주제만 죽어라 빌려보는 습성이 있는데~

대학 땐 주로 작가들 별로 소설을 몰아서 읽었었다.
국내소설 해외소설 가릴 것 없이. 전경린도 그 중 하나였던거고...

문젠 그렇게 몰아서 보면, 결국 머리 속에선 모든 작품이 다 섞이는!

<열정의 습관>를 국회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니(요즘엔 대출신청하면 사무실까지 배달해준다), 책 표지가 너무 낯익은. 흔치 않은 자극적인(?) 책 표지라 잊혀지지 않는...

분명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을까 말까 잠깐 고민했는데, 책 내용이 정말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기를 잘한 것 같다. 대학 때와 지금 내가 다르듯...
그 때와 지금의 느낌은 또 다르니 말이지(기억은 안나도~)!



세 여자 이야기. 미홍, 가연, 인교.
조금은 자극적인, 그녀들의 사랑이야기.
꽤나 자극적으로 쓰여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 부분 그녀들에게 공감할 수 밖에 만드는...
한국 여자들의 보편적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가장 보수적인 가현.
서른일곱살, 결혼 생활 12년 째이며, 두 아이를 낳아 키웠으나.
"소등을 하고 불빛이 물샐틈 없게 커튼을 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부부관계를 하면서도 두 눈을 필사적으로 감는" 그녀.

스스로를 파괴했었던 인교.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그 집의 삼촌의 여자가 되어 어린 나이에 여러 경험을 한...
그래서 그 이후 쉽게 사랑하지 못한 그녀.
"돌이켜 보면 그 시기 동안 난 섹스 장난감이었죠. 스무 살 무렵에 난 이미 평생을 통해 알아야 할 섹스를 다 겪었어요. 자그마치 스무 가지의 채위를요."

해봐서 뿌듯한 세가지와 앞으로 해보지 못해서 미련이 남거나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세가지를 가진 미홍.
그녀가 해보지 못한 것은 십대에 순결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 마약을 하고 섹스해 보지 못했다는 것, 동성애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
그녀가 해봐서 뿌듯한 세가지는 집단 성교를 해봤다는 것, 술취한 남자를 여관에 끌고 가 강간을 해봤다는 것, 동성애게 상당히 접근해 봤다는 것.

분량 상 미홍의 이야기가 가장 많아서 일까? 혹은 독신여성이기 때문에?

어느덧 난 미홍에 감정이입을 하여 읽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책을 읽으며 포스트 잇을 붙였던 곳을 보니 모~두 미홍 이야기이다.
가현이나 인교에는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한 것.

포스트 잇을 붙였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길을 가다 모퉁이를 돌아 갑자기 숨은 벽을 만난 기분. 미홍은 가슴을 동그랗게 말며 자신의 심장에게 속삭였다. 
  "난 사랑을 원하지 않아. 혼란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아. 이대로 직업적 커리어를 굳히면서 조금 더 버티고 싶어. 삶이 허리를 조금만 굽혀 그 오목한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오래 바라보고 싶어. 그러면 희망 없이 황량하게, 위안 없이 묵묵하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겨우 그 정도의 오목함에 기대어 제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이 공허한 거리를 혼자 걸어가야 해..." - 69 page


요즘 내가 종종 하는 생각. 난 사랑을 원하지 않는 걸까?
나 하나를 간수하기에도 너무나 바쁜 삶.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곁을 내줄 수 없는 삶.
그러면서도 누군가 오목한 자리를 내어준다면, 그 오목함에 기대어 살아가고 싶은 맘.

미홍은 섹시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 예컨데 진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다. 덧붙일 필요가 없는 말. 그리고 가장 섹시한 사람들이란, 약간의 권태가 스며든 오래된 연인들이다. 우린 좀 오래 되었지. 라고 생각하는 진지한 연인들 이건 그냥 미홍의 상상인데, 진진한 권태란 틀림없이 긍정적이고 대담한 변태를 생산해 낼 것이다.그들이 사랑을 통해 상상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서로를 통해 실현시키는 충실하고 노련한 연인들. - 90 page

진짜 사랑에 빠진 연인은 정말이지 섹시하다.
그리고 그 섹시한 기운을 주변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
단순한 몇번의 데이트가 아닌, 진짜 사랑에 빠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완전히!

이 문장을 읽고... 떠오른 몇몇! 최근 사랑에 빠진 유경이, 그리고 11년째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혜선이.

남자는 일생일대의 수치심 때문에 미홍 따윈 기억의 뉴런 숲 속에 거꾸로 처박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는 마지막 여자인 미홍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다면 미홍을 혐오할 것이다. 죽는 순간에 불쑥 떠오른다면 그는 머나먼 이국에서 나쁜 표정을 짓고 죽게 될 것이다.
잘못된 섹스란 의외로 영혼의 그림자를 잠식하는 법이다. 아무리 의미를 두려 해도, 육체적 패배를 이겨낼 수 는 없다. 그것이 만회할 기회가 없는 단말마적인 패배일 때는 더더욱. 그런 종유의 육체적 패배는 정신의 허위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날 밤 이후부터 P는 미홍을 단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 99~100 page

미홍은 동화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늙어가는 피터팬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는 몽상가들이 흔히 그렇듯 연처럼 둥실 떠올라 있었다. 착하고 모범적인 어린 시절이 끝난 후 이사회의 가치가 요구하는 댜ㅐ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 
엄청난 양의 공백이 성공한 남자의 발밑을 그처럼 캄캄하게 만드는 것이다. 밝게 빛나는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그런 남자들일수록 여자에게 자신의 세계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미홍은 알고 있었다. 동화의 시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혼란이라고, 변태라고 생각하는 너무나 결벽한 사람들. - 141 page

이 두 부분에서 생각난 J군. 정말이지 착하고 모범적으로만 살아온 사람.
외모부터 모범생 티가 풀풀나던 그.
평소 같았음 절대 만나지 않았을 그이지만, 임시국회 기간 중 인천에서 여의도까지 매일 데릴러 와서, 명일동으로 데려다 주고 혜화동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결국 넘어가 버린...

그러나 오래지 않아, 서로가 너무나 다름을 인지하고 헤어져버린 사람.

그를 만나는 당시, 우연히 만난 친한 언니 한명이 그에게 많은 충고를 했었었다.
내가 어떤 성격인지, 날 만나기 위해 그가 어떤 것 노력을 해야할지...
그 당시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고 했으나, 오래지않아 지쳐버리더라. 하하!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나.
퇴근 후에 야근을 하건, 지인들을 만나건 거의 고정적인 귀가시간 12시.

12시까지 야근을 해도, 놀고 싶으면 새벽 2시까지 놀다가 귀가한 후 다시 출근하는 나.
그렇게 놀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일에도 지장을 받는 나. 집에서 쉬기보단, 밖에서 움직이는걸 좋아하는 나.

그에 비해, 시간이 나면 집에서 쉬는걸 좋아하던 그.
동적이기 보단 매우 정적이었던 그.

집에 있을 때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는 나에 비해~
집에서 그저 늘어져 있는 걸 즐겨왔던 그.

처음엔 동적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의 노력이었던 것.
정말 정적인 사람이 과하게 동적인 나를 만났으니 피곤했을 법도 하지...

너무나 다른 스타일 때문에 그리고 사고체계 때문에 짧은 기간 만났다 헤어진 그.

저 문구를 보는데 그 사람 생각이 마구마구 났다.
그 사람에게 난 참 나쁜 기억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그와의 연애를 통해 얻은 교훈은...
난 정적인 모범생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 이후 새로 생긴 남자를 보는 기준. "겉보기엔 멀쩡해도 똘기가 있어야 한다"

.......결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허기가 존재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 같은, 타인의 피부와 체온과 손길과 눈빛, 점막의 다정함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어요. - 113 page

연애를 하지 않을 때 종종 느껴지는 감정. "타인의 체온이 그립다" 그리고 "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과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도..."

미홍과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진성. 

미홍은 엘레베이터에서 그를 보고 자신의 인연임을 느꼈고, 그를 미행하여 자신의 아랫 집에 사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을 상상하며 살던 어느날. 진성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섯 달 전쯤부터. 실은 당신이 자주 글을 쓰는 잡지를 정기구독 하고 있거든요. 당신 문장이 좋았어요. 명료하면서도 시각적인 문장. 그쪽으로 잘 아는 친구에게 물었는데, 나와 같은 오피스텔에 산다고 가르쳐주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그날부터 열 칸씩 우편함을 뒤졌죠. 당신 이름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꼬박 11일이 걸렸어요. 내가 그렇게 진지한 태도로 접근한 예는 근래 몇년 동안 없었던 일이에요. 시도 쓰더군요. 시집을 읽고 있을 즈음에 마침내 엘레베이터에서 당신을 만난 거에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당신을 살금살금 따라가보았어요. 1106호 앞에서 멈추고 키를 꽂더군요. 미처 상상하지 못했는데, 내 방 천장 바로 위라 가슴이 뭉클했어요." - 148 page

이런게 인연? 끌림. 
두 사람이 동시에 끌림을 느끼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서로의 마음을 알고난 후 서로에게 한 없이 빠져드는 그들. 미홍과 진성. 
결국 미홍은 진성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 할정도로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매일 보지 말고 적당히 보자고 말을 한다. 거기에 대한 진성의 대답.

  "사랑은 집착하는 거야. 두려움 없이 집착을 키우고 만에 하나 잃어야 할 때는 태산 같은 집착의 고통을 순순히 치르는 거야. 그게 사랑이지. 사랑을 절약하고 집착의 고통에 빠질까 봐 두려워 하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난 지금과 같은 사랑을 원해. 마음껏 사랑하는 사랑을. 만질 수 있고 당신 가랑이 속에 파고들 수 있고, 수없이 혀를 감고 당길 수 있는 이런 사랑을. 행위가 분명히 존재하는 매우 성적인 사랑을." - 161 page

사랑은 집착이다. 
그런데 난 집착이 무섭다. 그래서 사랑을 안하고 있다. 
집착을 했다가, 그 집착 때문에 고통을 받을까 두려운 것. 진짜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 속에 묻혀 있는 빛을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두려움 없이 이 부조리한 삶 속에 드러내는 행위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해 가면서 동시에 자신의 궁극에 이르는 길이에요. 나는 이 사랑을 등을 뚫고 나갈 긴 칼처럼 내 몸 깊숙이 받아들여요. 사랑이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 운명적 요구를 향해 나 자신의 전부를 줄 거에요. 생명을 주고 생명을 되찾을 거에요. " - 201 page

미홍이 혼잣말로 한 말.

연애 안한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나...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연애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이 기분.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