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리얼해서 너무나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책!
잠실동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진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듯하다.
그래서 이 남자 같은 전형적인 강남의 엘리트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우수 어린 눈매, 가늘고 높은 콧대, 얇은 입술, 투명에 가까운 하얀 피부, 무지갯빛이 도는 무테안경. 강남에서 나고 자라면 다 이렇게 차갑고 세련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걸까? 한동안 잠잠했던 강남 이주 욕구가 내면에서 거세게 꿈틀거렸다. 우리 지환이도 강남에서 살게 하고 싶다! 세련된 이미지와 멋진 학벌을 갖추어주고 싶다! 미래의 장차관이 될 인물들과 죽마고우로 지내게 해 주고 싶다. - 91
그는 찬찬히 아파트 건물을 둘러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수업을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와 이쪽으로 건너올 때마다. 그는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차선 여섯 개짜리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저쪽과 이쪽은 어쩌면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그가 살고 있는 새마을시장 안쪽 골목은 보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아 걸으면 늘 뒤가 불안했다. 차 소리가 나면 얼른 가게 쪽으로 붙어야 했고, 가게 쪽으로 붙을 때면 가게 밖에 나와 있는 물건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쪽으로 건너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널찍하게 뚫린 길, 깔끔한 상가 건물 내에 들어찬 모던한 가게들. 좌판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먼지 쌓인 조악한 고무인형도 없으며, 차가 지나다니지 않아 안심하고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꼭 소인국에서 거인국으로 건너온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다 말고 그는 씩 웃었다. 저가 언제부터 이 아파트에 드나들었다고. - 287
"머리 좋은 애들이 공부 잘한다는 건 다 옛말입니다. 머리가 좋으면 뭐합니까? 공부하는 습관이 안 잡혔는데. 습관은 곧 실력입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한 애들이 커서도 많이 하고, 많이 한 애들이 결국 이깁니다. 지금부터 학원을 보내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주지 않으면 중학교 때 아차, 하고 땅을 치게 됩니다.
학원 워낭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엄마나 흔들리면 안 된다. 맘을 굳게 먹자. 내일이라도 서초동 엄마네에 가서 이사 얘기를 해야겠다. - 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