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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29세의 크리스마스(카마타 토시오)

by 하트입술 2010. 12. 6.


12월 6일(월) 00:05 지금 막 <29세의 크리스마스>를 다 읽었다.

고인이 되어버린 영화배우 장진영와 엄정화 그리고 이범수가 주연이었던 영화 <싱글즈>의 원작인 일본소설.

2003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지은이와 함께 천호동 한일시네마에서 본 싱글즈.
당시 난 아무런 준비없는 졸업이 무서워 휴학을 앞두고 있었고, 지은이는 이미 일년간 휴학을 하고 캐나다를 다녀와서 3학년 이었다.

<싱글즈>를 본 후 지은이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난다.
"우린 저 나이에 저렇지 않겠지?" 이 말에 둘다 공감을 했다. 우리의 스물아홉은 그들과는 다를 줄 알았다. 그때 그 시절엔...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지은이의 스물아홉은 작년에 지나갔고, 이제는 나의 스물아홉이다.
82년 1월 1일 아침 8시에 태어난 나. 빠른 생일인 덕분에 서른을 두번 겪는 중이다.
작년, 친구들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 내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
작년만 해도 "난 아직 서른 아냐!"라며 여유로워 했다. 친구들이 그럴 때만 한살 어리다고 구박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려는 지금. 내 나이가 낯설다. 아주 많이.

그래서였을까? 최근 스물아홉. 29세 관련 서적들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공감하고 싶음이었을까, 혹은 위로받고 싶어서?

<29세의 크리스마스> 이 책은 국회 도서관 검색으로 찾은 책은 아니었다.
트친님이 트위터 책사모에 추천도서로 올린 글을 읽고 <싱글즈>의 원작 소설이라기에 찾아서 어제 오늘 읽었다.

책을 덮은 지금. 스물 아홉 그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우정이 너무나 잘 이해가 간다.

그래서인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싶다. 지은이, 혜선이, 은정이, 인영이 등...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비슷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싱글즈>에서의 나난과 동미의 우정. <29세의 크리스마스>에서 노리코와 아야의 우정.
그리고 일. 사랑.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것들...

노리코는 화가 났다. 안 그래도 잔뜩 지쳐서 돌아왔는데 그런 일로 잔소리를 듣는다는 건 참을수 없었다. 
  "난 말이야,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서,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여자가 되라, 그러기 위해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그렇게 배우며 자랐어. 그래서 이렇게 일하는 여자가 됐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막무가내로 시집이나 가라,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고 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단순히 엄마의 욕구불만을 나한테 덮어씌웠던 것뿐이었어?"
  노리코는 하루치의 스트레스를 전부 엄마에게 퍼부었다.
  "난 머리가 벗겨지면서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구. 그걸 마치 불효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정말은 그런 말까지 엄마에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니 멈춰지질 않았다.                       - 1권 64~65page

이 부분. 정말 우리 모녀를 보는 듯 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서 씻고 기초화장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엄마가 방으로 슬쩍 들어와 내 침대에 앉는다. 그리고 누구네 집 딸은.... 이러면서 남의 결혼이야기를 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넌 언제 결혼할래?"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하다가 결국. 엄마랑 대판 싸웠었다.
그 내용이 거의 소설에 나온 내용과 비슷했다. 정말 완벽히... 모든 엄마들이란 다 그런건지?

  "서른이 가까워지면 말이야...."
  좀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리코가 말했다.
  "옛날엔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는 게 많아."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은 노리코의 눈이 멀리 있다.
  "맨얼굴로 있는 걸 못해."
  이야기가 곧바로 이었다.
  "맨얼굴과 알몸 어느 쪽이 더 부끄러울까, 하는 수필이 있었지."
  노리코가 말한 수필 속에도 스물아홉의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잔 갑자기 욕실에 들어온 그를 피해 얼굴을 가렸었다.
  스물아홉의 여자는 맨 얼굴이 부끄럽다.
  펄이 든 분홍 립스틱도 부끄럽다.
  늦은 밤 달랑 하나만 사게 되는 도시락도 부끄럽다.
  어린 여자를 경계하는 스스로도 부끄럽다.                                                                               - 1권 92~3page

이 부분을 읽으며 난 맨얼굴과 알몸 중 어느 쪽이 더 부끄러울까 생각을 했다.
당연히 알몸이 부끄럽지만 맨얼굴 또한 만만치 않게 부끄럽다. 매우매우. 맨얼굴=알몸 동일하게 부끄럽다 난.

켄이 말한 것처럼 여자에게는 여러 선택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을 자기의 결단으로 선택해서 살아가야 한다는건 아주 힘든 일이다. 옛날 여자들이 차라리 편했는지도 모른다.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고독하지만 자유롭다'고 전기에 쓴 코코 사넬의 말이 생각났다.                                                                                                                                 - 1권 94page

서서히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년즈음 결혼을 할 예정인 친구들도 있다.
심지어 아이를 낳은 친구도 있고, 임신중인 친구는 더더욱 많다. 오늘 윤희한테 온 문자에도 "임신 4개월이야"라고 적혀있었다.
결혼한 칭구들 중엔 일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가정주부가 된 친구도 있다. 자신의 일을 하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친구를 보면... 기분이 참 묘하다. 그녀들은 행복할까? 나도 그녀들처럼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난 결혼보단 일이 더 좋은데... 이 선택이 맞는건가? 계속 갸웃갸웃 한다.
야근보단 피부관리, 몸관리에 매진하여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여 남자를 만나고,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일 할 시간을 쪼개서라도 소개팅도 많이 하고 그래서 남자들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들....

그리고 실제 몇몇 친구들은 그런 조언을 한다.
"너!! 일 좀 그만하고 피부관리도 받고 다이어트도 좀 하고 그래! 너 그렇게 지내다가 어떻게 남자 만날래?"
"혼자 영화보고, 혼자 여행다니고 그런 짓도 좀 하지마!! 너 혼자 너무 익숙해 지면 위험하다."
그리고 그런 조언을 들으면...
"난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좋아"라고 대답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휑한건 사실이다.

"서른 넘으면 노리코, 맞선 조건도 훨씬 나빠져. 후처 자리거나 나이가 아주 많거나."
" 나, 하고 싶지 않은데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그럴 마음 없어.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고, 안 나타나면 혼자 사는 거야. 당연한 건 그런거야. 그게 당연한 삶의 방식이야, 엄마!"
  엄마와 노리코는 너무 가깝고 또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여러 가지들은 언제나 이가 맞질 않는다. 도대체 언제쯤 엄마와 난 진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 올 수는 있을까?                                         - 1권 114page

이 말 또한 엄마와 내가 자주 서로 하고 있는 대화와 너무나 똑같았던 구절. 하하!

노리코도 아야도 마음속으로 끄덕이고 있다. 이루고 싶은 꿈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사소한 꿈이란 없는 거다. 살아가는 일은 자꾸 버거워지지만 그래도 견뎌낼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사소한 꿈꾸기 때문이다.                               - 1권 136~7page

지금 내가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 친구들이 꾸고 있는 꿈은??
서로의 직장생활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의 여자로써 느끼는 애환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드센년'이 되어간다고 한탄을 하던 우리의 꿈은? 무엇을 위해 이다지도 아둥바둥 살고 있는 것일까?

아야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었다. 노리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권 33page

친구들 앞에서 울었던게 언제였던가?
몇년 전 생일 전날이자 새해의 마지막날이었던 12월 31일 밤. 그와 헤어지고 1월 1일 새벽 지은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눈물만 났다. 그런데 그때 그녀는 함께 울어줬다. 새해 첫날을 울면서 시작하다니..
정말 버라이어티한 한해의 시작. 나야 헤어져서 그렇다 치고... 지은이는 못난 친구를 둔 덕에(?) 울면서 한해를 시작했다니...
아직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날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의 생일을 올해는 놓쳐버렸다는 것이 더 미안하다.
국감 끝나기 전날이었던 지은이 생일날. 바빠서 축하문자 축하전화 하나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문자가 날라왔었다.
"너 오늘 내 생일인건 아냐?"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전 은정이의 생일도 이틀이나 지나서 기억해 낸 것을 떠올리며 씁쓸해졌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생일을 그냥 넘겨버리다니...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구나, 주변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그런 다짐.

"아빠가 필요하면 내가 아빠가 되어줄게. 고모가 필요하면 내가 고모할게. 경제적으로 곤란하면 내가 벌어다줄게. 호적 가지고 누가 말하는 인간 있으면, 내가 가서 패주고 올게. 평생 아야 옆에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낳아라."
노리코는 힘있게 말헸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가는 해결사가 붙어 있을 거니까,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아야!".
  "노리코!"
  아야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자기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 정말 멋진 일이야. 제일 행복한 일이야. 아야의 마음, 아이도 언젠가 분명 알아줄거야. 자기 인생을 사랑해줄 거야."                                                                                                        - 2권 226~7page

아야가 미혼모를 선택했을 때 노리코가 한 말들...
혹시 내가 이런 상황이 된다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사랑하는 내 친구들...

문득 오늘 낮에 혜선이에게 받은 문자가 떠오른다.
"은정이랑 코스트코 갔다가 우리 연말 파티를 위해 빌라엠이랑 사커 샀어! ㅋㅋ"

아직 송년회 날짜도 못 잡았는데, 그 때 먹겠다며 술부터 사들이고 있는 녀석들...
"한밤 중이라도 술한잔 하자!"라고 부르면 바로 달려나오는 녀석들...덕분에 항상 밤 11시 넘어서 동네에서 보곤 하는 녀석들...
일욜 오전에 "소풍가자"고 문자 날리면, 30분 안에 바로 완벽하게 소풍준비 마치고 나오는 녀석들...
그리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함께 수다떨며 맥주 마시는 걸 즐기는 녀석들...  고맙다. 썅그릴라!!


니들이 있어 서른이 두렵지 않아!! 근데 나 내년에 서른 맞아!! 난 82년생 이라구~ 으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