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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by 하트입술 2011. 10. 18.



무소의뿔처럼혼자서가라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오픈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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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읽었던 공지영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가지 이유로 이 책이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바로 다시 읽었다.

대학 때와 다른 감정. 그 만큼 내가 많이 큰 거겠지?
혹은 최근 내 심경이 조금은 불안정해서 이 책이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별거 아니란다. 정말 별거 아니란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난단다. 네가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러면 너는 알게 된다. 네가 지금 느끼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울 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산다는 건 바보 같은 짓거리들의 반복인 줄을 알게 될거란다. 자, 이제 울음을 그치고 물러서렴. 그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그 밖을 향해서.- 43 page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을 물러서지 못하고 있는 요즘.
이성으로는 너무 냉철이 판단하고 있는데. 머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건 다른거지.
그게 내 문제이기도 하고. 이성과 감성이 있을 때 이성을 따른다는 것? 그리고는 매우 힘들어 한다는 것?

"그래 우리들은 그런 세대야.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생을 살라고 가르쳤고,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지. 그러니 우리가 부딪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단지 나는 이제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피곤할 뿐이야. 정말 피곤할 뿐이야."
혜완은 담배를 끄고 머리를 부볐다. 선우도 입을 다물었다. 늦은 오전의 시계소리가 둘의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다. 혜완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 93 page

자신과 다른 생을 살라고 가르친 엄마.
사회생활을 하라고... 집에 있지 말라고 가르친 엄마.
그래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제 결혼해서 집에 있는 친구들이 문득 문득 부러워지는 건 왜일까?

둘 사이로 침묵이 파고들었다. 영선이 손에 쥐고 있던 뮈세의 시집을 혜완에게 들어 보였다.
"너 여기다가 줄 쳐놓았더라.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가끔 울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거 읽고 나서 생각한거야. 근데 이상해. 난 눈물이 안 나. 요즘 그게 이상해."
"이상하긴...... 눈물은 한참 더 뒤에야 나와."
"한참 뒤에?"
눈물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해놓고 혜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영선의 눈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영선은 서둘러 담배를 가져다 입에 물었다. 술도 담배도 영선이 하는 대로 혜완은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게 치료법이라고 혜완은 믿고 있었다. - 125 page

펑펑 울어본게 언제인지? 펑펑 울고 모든 걸 씻어 내고 싶은데...
왜 주르륵 흐르는 눈물 밖에 나지 않는지...

수많은 전화번호들이 혜완의 손가락 사이로 스쳐지나갔다. ㄱ, ㄴ, ㄷ..., ㅁ란, 선우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 그녀의 손가락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시 재빠르게 장을 넘겼다. 그리고 ㅂ란부터 아주 천천히 수첩을 넘겨보았다. 하지만 금방 ㅎ란이 나타났다. 혜완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시 ㄱ란을 펼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수첩을 넘겼다. 얼마 전 쌍둥이를 낳은 친구, 남편 따라 대구로 내려간 친구...... 이번에도 역시 ㅎ란이 나타났다. ㅎ에는 황미현이라는 이름이 하나 달랑 적혀 있었다. 그녀는 혜완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녀는 미국지사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난 지 벌써 6개월이나 된 사람이었다. 길거리 구멍가게 앞의 불빛에 의지해 수첩을 뒤지고 있던 혜완의 허망한 표정 위로 천천히 눈물이 고였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왜 적어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무슨 용건으로 수화기를 들기 위해 적어놓았을까. 그들은 결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었다. 생각이 나지 않는 이름들도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혜완은 그들이 혹시라도 반가운, 하지만 자신이 잊고 있었던 따뜻한 이들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다시 실망하고 말았다. 혜완은 주머니를 뒤져 십원짜리를 찾아내 경희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 역시 전화를 받지 안았다. 혜완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45분, 혜완은 전화를 끊었다. - 156 page

간혹.. 뼈 속까지 사무치게 외로울 때가 있다.
수시로 변경되는 업무 일정 때문에 약속을 안 잡았는데, 금요일 6시 경 갑자기 시간이 생겨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을 때...

핸드폰 주소록을 보면 500개가 넘는 번호가 담겨있는데~
그 중 어떤 번호에도 전화를 걸 수 없을 때...

한밤중에도 전화를 해서 거리낌 없이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왠지 그 번호를 쉽게 누를 수 없을 때... 그 때 느꼈던 감정들.

혜완이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대꾸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늘 중요한 일에 닥치면 특히 그것이 모욕일 때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 생각도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선우에게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그 문연우라는 선우의 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이제 다시 무언가 대꾸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다는 건 언제나 말해야 할 곳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말을 꺼내는 실수의 반복이었다.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든 할머니들을 만나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소설에 비견하는지도 몰랐다. 이미 그 상황 속에서 소설만큼 멋들어지게 생을 살아 버린 사람은 더 이상 쓰고 시을 여지가 없을 테니까. - 158 page

모욕을 당하면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 생각을 못하는 나.
이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장면.
작년 예산안 대치 후... 의윈회관 복도에서 마주친 한나라당 남자 비서관이 날 협박했던 장면.
협박을 당하며... 너무 멍 해서 강력히 항의하지 못했던 장면. 그때 모욕을 당해 내 머리속이 하얗게 변했던 것 같음. 그리곤 꽤나 오랫동안 분노했었지... 여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 미친놈이 만만히 건드렸단 사실에...

"너 만나는 남자 있니?"
눈을 감고 잠시 몸을 뒤척이던 경혜가 불쑥 혜완에게 물었다.
혜완의 눈길이 쭈뼛 치켜지며 경혜의 눈감을 얼굴을 바라보았다.
"있어, 없어?"
경혜는 몸을 뒤척여 소파 팔걸이에 제 얼굴을 얹어 혜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 속여도 난 못 속인다. 말해 봐."
혜완은 식어 버린 커피 잔을 들고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있었어."
"있었어? 그럼 지금은?"
경혜의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을 보며 혜완은 담배를 물었다. 입이 몹시 썼다.
"헤어졌어. 어제."
혜완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경혜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그러면 어제 같이 있었다는 남자가 그 남자야?"
"왜 그러는데?"
혜완은 말 꼬리를 흐렸다. 경혜가 차렵 이불을 무릎에 두르고 일어나 앉으며 말을 시작했다. 176~7 page

있었어. 헤어졌어. 어제.
그만 만나기로 한 다음날 읽은 책인데... 이런 부분이 있더라... 하아.

"나도 한때 알코올 중독이었어. 누구나 빠져나올 수 없는 시기가 있고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시기가 있어. 신경이 끊어져 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단 말야. 눈앞에 자기의 신경이 보여. 거의 마모되어서 실낱처럼 연결되어 있는 신경이 누군가 아주 가느다란 실을 가져다 비비기만 해도 톡,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어. 무조건 금지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영선인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넌 영선일 못 믿니?" - 190 page

빠져나올 수 없는 시기.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버텨야만 하는 시기.
친한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라고...
넌 스스로에게 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냐고 하지만...
그게 내 성격인걸.

욕심쟁이라 일도 논문도 못 버리겠고...
둘다 잘했으면 좋겠는데...
둘다 못하니까 미칠 것 같고...
그 와중에 연애도 말썽을 부리니 머리가 터질거 같은데...

여행이라도 훌쩍 떠났다 오면 머리가 좀 정돈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 여유는 없고...
"쉬고 싶다. 쉬고 싶다"만 무한 반복하며, 버티고 있는걸...

언제부터일까? 해맑던 내가 웃음을 잃어버린게?

"대체 일부일처제라는 게 인간의 본성에 얼마나 어긋나는 겁니까. 한 인간이 어떻게 한 이성만을 평생 사랑하고, 그렇게 산다는게 가능하기나 한 이야깁니까? 안그래요?"
"글쎄요. 모두가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회가 그것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러면 괜찮겠죠. 아이의 성이 꼭 아버지를 따르지 안아도 자랑스러울 수 있고 여자가 혼자서 아기를 키우면 사람들이 그 엄마를 기특하게 여겨주는 그런 사회라면 가능하겠죠."
"사회 탓이 아니라 여자들의 생각이 남자들보다 더 봉건적인 것 같아요. 그 아가씨도 그렇고, 조금은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약간은 봉건적인 게 여자들한테 유리해서 그래요. 여자들이 스스로 봉건적이라기보다는 말이죠. 제 생각은 그래요." - 216~7 page

"약간은 봉건적인 게 여자들한테 유리해서 그래요" 초공감.
아직 우리 사회에선 여자들은 봉건적인게 유리하다.
그래서 봉건적이지 않아도 봉건적인 척 해야 한다.

돌싱이 되어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한 친구가 "이민갈까?"란 말을 했다.
이 사회가 싫다고.. 편견이 가득한 이 사회가 싫다고...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항상 친구들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 때문에 얼마나 아파하고 있었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못난 친구였기에...

"혜완와 우린 왜 이렇게들 살까?"
아주 한참 만에 영선이 입을 열었다.
"경혜 말대로 딸인 우리가 태어났다고 잔치한 집안은 물론 없었겠지만 우린 부모님 속도 별로 안 썩였고 우린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우린 나름대로 야심들도 있는 여자들이었잖아. 그런데 우린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응?" - 237 page

"엄만 정완이 같은 딸 열이라도 안 부럽다. 사람의 일이란 건 알 수 없는거다. 인생은 긴 거고, 난 누가 뭐래도 니가 자랑스럽다. 어쨌든 넌 소설가고, 예술가야. 넌 니 힘으로 살아가는 여자다. 지금은 니가 돈 때문에도 고생하고 그러지만 니 나이에 인생은 알 수 없는거야. 그 나이 때는 누구도 교만하거나 누구도 실망할 필요가 없는거다." - 275 page

"넌 가장 강한 여자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넌 언제나 어린아이 같았어. 어떤 땐 마치 니가 너의 상처를 내게 들이대면서 목을 조르는 것 만 같았어. 자, 문선우 봐라 이래도 니가 날 좋아할래? 이래도? 이렇게 나쁜 짓을 해도? 처음엔 니가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줄 알았어. 참으려고 애를 썼지. 그 다음엔 너의 산처 떄문인 줄 알았어. 그래도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알았어.
넌 내게 기대고 싶었던 거야.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다고 내게 소리를 질러가면서 넌 내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던거야."
혜완의 턱이 선우를 향하여 재빠르게 치켜졌다. 선우는 커다란 결심이라도 한 듯 재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니가 언젠가 말했지.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라 하고 가르치고, 아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여자를 얻어라 하고 가르쳤다고, 우리 세대는 그런 딸들과 그런 아들들이 만나 끝없이 갈등하는 세대라고. 그래 그 말은 공감해. 나 역시 남자야. 이 말은 나 역시 20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사회에 뿌리박힌 통념을 혼자서만 거부하지 못했던 한 인간이라느 뜻이야. 그런 나는 어떤 때는 니가 좀 더 고분고분하고 니가 조금만 더 멍청한 척해주고 니가 조금만 더 체념적이었으면 하고 바라.... 그것조차 부인하진 않겠어. 적어도 20년 동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여자의 본래 모습이라고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너는 말했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시라고... 한 때 희망을 가졌던 세대라고 했던가? 그래 그것도 인정해. 하지만 그것도 다는 아니야. 이 세상에 전적으로 그것이 다인 그런 이유는 없어. 넌 여자들의 아픈 삶에 대해 나에게 누누히 역설했고 우리들의 몸에 밴 봉건성에 대해 성토했지만 넌 한 가지는 간과했어. 그게 바로 그런 점이야. 그렇게 불완전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애쓰지 않으면 문제는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거. 넌 그걸 잊었었어. 넌 나자가 홀연히 여성 해방의 깃발을 들고서 나타나주기를 바랐던 거야. 그게 너의 함정이었어. 그건 신데렐라의 왕자님이 유리 구두 대신 깃발을 들고 나타나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내가 그 깃발을 쭈뼛거리며 들까 말까 망설였을 때 너는 그 깃발을 들고 망설이는 나의 손을 같이 잡아 주는 대신 날 비난하기 시작했지. 너 역시 왕자님을 기다렸던거야. 니가 경멸해 마지 않던 그 신데렐라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거지." .... 중략.....
"나도 그저 봉건적인 여자 만나서 살림이나 하게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 여선생을 집안에까지 인사시켰던 것은 니가 이혼녀라서가 아니라, 그래서 집안하고 싸워야 될 일이 번거롭고 두려웠기 때문이 분명히 아니라, 니가 니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얼치기 결혼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던 거야. 내가 사랑했던 씩씩하고 꿋꿋했던 서혜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주눅이 든 채로 내게 기대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핑계를 댔지. 사회가, 남자들이, 혹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다고 말이야. 아니, 우리 어머니들은 그보다 강했어. 여자로 태어난 이상 넌 그것과 당당히 맞섰어야 했어. 혼자서라도 우선 혼자서라도...... 다시 말하지만 내가 너에게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