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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Book

도가니(공지영)

by 하트입술 2011. 10. 18.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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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참 화제가 되었던 책. 그리고 최근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도가니>

광주 인화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 2009년 당시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읽지 않았던 책.

읽고 나면 너무 힘들까봐 읽지 않았던 책을 결국 사서 읽고 말았다.
(국회 도서관에 예약이 너무 밀려 있어서 예약 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국감 마지막 날 후생관 서점에서 책을 샀고... 국감 다음날 책을 다 읽어버렸다.

이미 아는 사건의 전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서 묘사된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청각장애인 아이들... 학대 당하고, 성추행 심지어 성폭행까지 당했으나 저항할 수 없었던 아이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

책을 읽으며 꽤나 힘들었다. 아니 아주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서유진과 강인호를 응원하며 책을 한장 한장 넘겨갔다.

"엄마가 네게 공주 같은 옷은 입히지 못할지도 몰라. 레이스가 늘어진 침대도 사주지 못할지 몰라. 아빠랑 놀이공원에 가서 온 가족이 사진을 찍지 못할지도 몰라.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어. 우리 바다하고 하늘이가 컸을 때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여자들인 너희가 더 씩씩하게 거리를 걸어다니게 해주겠다고. 아주 조금이라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엄마는 볼이 빨갛도록 뛰어다닐 거라고." - 133 page

서유진이 딸에게 하던 독백. 이 부분이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
"우리 바다하고 하늘이가 컸을 때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여자인 너희가 더 씩씩하게 거리를 걸어다니게 해주겠다고. 아주 조금이라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엄마는 볼이 빨갛도록 뛰어다닐 거라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간혹 내가 무얼 하고 있나 헷갈려 하면서도,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조금이나바 바뀔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는 나날.

잘못된 정책을 바꾸고,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예산 낭비성 정책을 없애고...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뜬 구름 잡는 것 같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 내 삶의 목표.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나 바꾸는 것.

강인호는 민수와 마주섰다. 물론 민수의 부모는 청각장애와 지걱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작은아버지가 그들을 돌봐준다고 들었다. 글을 읽지 못해도 합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문자를 몰라도 돈과 그리고 도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이상한 문서를 말이다.
- 그 사람들이 찾아가서 빌었다고 하더라. 싹싹 빌었대, 용서해달라고. 민수 부모님들 착하시잖아. 남들 미워하지 못하시는 분들이잖아.
강인호는 어렵게 말했다. 민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그 사람들 감옥에 있잖아요. 이건 용서가 아니잖아요? 동생이 죽었는데 어떻게 용서를 해요!
민수의 두 눈이 날카로운 빛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강인호는 고개를 떨구었다. 용서, 그래 이런 건 용서가 아니었다. 결코 용서가 아니었다. 용서는 나약한 자들의 것은 아니니까. 용서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하는 거니까. 용서란 죄악이나 부정이나 폭력이나 모욕에 눈감는 일은 결코 아니니까. 단죄를 해야 그것을 용서할 대상이 생겨나는 것이니까. 그러나 교사로서 그는 민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민수가 거칠게 수화를 시작했다.
- 있을 수 없어요. 우리 영수를 죽인 게 그놈인데, 이번에 나가면 누가 묻든 말든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목욕탕에서! 화장실에서! 보이기만 하면 때리고 나와 내 동생의 바지를 벗겼는데...... 우우!!
민수는 괴성을 지르며 팔의 셔츠를 올리고 아직도 멍자국이 남아있는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었다. 강인호가 민수의 두 손을 꽉 붙들었다. 민수는 곧 바닷가로 달려가 절벽에 몸이라도 던질 듯 버둥거렸다. 야윈 두 뺨으로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우우우우!"
강인호는 버둥거리는 민수를 꽉 안았다. 미안하다, 그는 조그맣게 우물거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민수야. 그건 절대로 네 부모님 탓이 아니란다. 그건 절대 부모님 탓이 아니란다. 그의 귓가로 유리 할머니의 음성이 웅웅거렸다. - 234~5 page

민수의 마음이 느껴지던 대목. 동생이 성폭행을 당한 후 기찻길을 걷다가 기차에 치여 죽었지만...
합의를 해준 민수의 부모. 작은아버지...
갑갑했던 너무나 갑갑했던. 그러나 현 제도에선 어찌할 수 없는...

그녀가 쏘아보자 장경사가 말했다.
"제 말을 좀 들어봐요. 서간사는 법정에서 정의 같은 게 건져질 거라고 생각해요? 전관예우가 뭔지 알아요? 황변호사, 서울 강남에 사무실 한 채와 집기 일체를 약속받고 왔어요. 그거 얼마나 거금인 줄 아시잖아요. 그 사람 무진의 수재였고, 바보가 아닌 담에야 저 인간들이 성폭행한 거, 농아들 유린한 거 모를 것 같아요? 천만에! 황변호사도 고민했을 거고, 그 나름의 사회정의를 위해 농아들 몇을 희생시키는 게 이 고장의 발전을 위해, 말하자면 대의를 위해 옳다고 판단했을겁니다. 판사? 그 사람들 서로서로 대학동기, 선후배, 고시동기, 처삼촌, 고등학교 동창의 사돈, 사위의 은사에요. 이번 사건을 맡은 검사? 무진에서 임기 육개월 남았어요. 이번 사건 물고 늘어지다가 행여 누군가의 심기라도 건드림녀 이번에는 서울로 가서 부인과 아이들과 합칠 계획을 망치겠죠.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일점 때문에 친구는 낭인이 되고 자신은 판검사가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명 때문에 처삼촌과 대학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진정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을 줄 알아요?" ........... 중략...........
"당신이 하는 짓이 너무...... 뭐랄까요, 왜 쉬운 길 놔두고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답답하고 바보 같았어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나 바보짓은 말하자면, 예를 들어 처음 경찰이 되고 한 일년 반쯤만 하다 마는 거잖아요. 스물몇살이 되면 없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결혼하고 애 상기고 여기저기 부모님이 아프시기 시작하면 고만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혼하고 애 아프고 부모님도 성치 않은 당신이 그걸 하고 있으니까...... 어이가 없어요. 더구나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 254~6 page

장경사가 서유진에게 하던 말.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말.
권력을 나눠가진 기득권층. 그리고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의를 너무나 일상적으로 넘겨버리는 사람들.
돈으로 모든걸 해결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피해보는 건 가지지 못한 사람들. 약자들...
그들 편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고 싶다 다짐하면서, 민원인들의 전화에 '법'과 '제도' 그리고 '예산'을 운운하는 나도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가끔 내 자신이 무서워 지는 요즘.

마지막 말을 하면서 서유진은 잠시 웃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점점 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철학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성폭력 문제에 왜 이렇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목숨을 걸고 있느냐는 거야."
강인호가 대답했다.
"나도 그걸 잘못 판단했어. 아주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 아주 간단한...... 그것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싸움이 될 줄은 몰랐어."
서유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이 싸움을 해야겠어.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두 유리 그리고 민수 때문이야. 바다하고 하늘이 그리고 새미 때문이야. 아까 무진대 병원에 갔을 때 본 이제 막 세상에 나와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 갓난아기들 때문에 말이야." 265~6 page

성폭행. 성추행. 장애인시설,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법인.

<도가니>를 통해 들썩이는 문제들...
소설 <도가니>를 영화로 만든 영화 <도가니>가 개봉된 이후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인화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 그리고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개선책.
단지 이 분노가 계속 이어져서 반드시 제도 개선으로 법 개정으로 이어지기를...

토호세력화 된... 클라이언트의 복지가 아닌, 자신의 복지를 일삼고 있는 사회복지범인들에 철퇴를 내릴 수 있기를... 이로 인해 악질 사회복지법인들이 장애인시설, 사회복지시설들이 모두 문 닫을 수 있게 되기를...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복지위 소관이기 때문에 업무가 되긴 하지만... 하하!)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있던 시설 비리. 사회복지법인 비리.

이번 기회에 싹 해치워버릴 수 있을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