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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하트(정아은)

by 하트입술 2015. 8. 23.

 

 

사람들은 나이든 싱글 여성은 허우대만 멀쩡하면 웬만한 남자는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라면 돈을 줘도 안 가질 남자라도 나이 든 싱글 여성은 이게 어디냐 하며 덥석 받아 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33

 

너무나 공감가던 구절. 정말 짜증나는 현실.

 

내가 네 살짜리 아이에게 학대를 당하며 고초를 치르는 동안, 아이의 엄마는 가슴 한쪽에 젖을 물린 채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친구와 미친 듯이 수다를 떨었다. 내용도 온통 시댁과 남편에 관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화제들뿐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동일한 입장이었떤 유라도 어느새 예비 유부녀라는 신분으로 갈아타 귀를 쫑긋 세우고 선배들의 경험담을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럴 때이다.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생의 동반자와 새끼들을 데리고 와 지지고 볶을 때, 그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이 '새끼들 돌봄'과 '친구와의 사교'라는 멀티태스킹을 해내도록 성심으로 도와야 할 떄. 정작 나는 고나심도, 아는 바도 없는 화제에 대해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때. 아프거나 외로울 때가 아니라 바로 이럴 때! 정말이지 나는 결혼하고 싶다. 아무나 붙잡고 당장에라도 결혼하고 싶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건 얼마나 큰 손해인가.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을 만나면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 자유를 존중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무거운 짐들을 당연한 듯 나누어 들자고 한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시간이 넘쳐나는 인간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이 현상은 심화된다. 정작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돌보거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간혹 내 의견을 말하면, '네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그래'라거나 '그러니까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같은 지긋지긋한 말만 돌아온다. 독신자 클럽 같은 데 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지겁게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 152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화제들. 동네 친구들 만나면 맨날 시댁 이야기, 얘 이야기... 하하하!

 

이.십.대. 그 단어를 나직이 음미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 내게도 20대가 있었지.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육신은 어느새 20대를 훌쩍 뛰어 넘어 낯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른일곱. 아무리 되새겨도 늘 낯선 나이. 3년 뒤면 나는 마흔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흔. 그 때 나는 어떤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까. 서치펌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여전히 싱글일까. 지금처럼 흐물 같은 남자나 만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작정 나이 먹기가 두려운 것. 그래서 인류가 수천년 동안 행해온 공고한 관습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것. 차라리 차악을 택해 무시무시한 세월을 덮고 건너가는 것. - 200

 

 

"오늘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해요."

나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네?"

태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거기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내 손에 있던 CD를 쥐어주었다. 차갑고 건조한 손. 나는 한동안 그 손을 바라보았다. 저 손이 나를 쓰다듬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기대했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어쩄든 그 바람이 실현된 적도 있었다. 나, 이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만 아니었다면 그 밤에 흐물을 마로니에 공원에 혼자 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생이란 그런 것. 진행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든다면 그것은 파국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완전한 격정과 놀라운 속도,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완성된다. 원인과 과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생에 같은 순간이 두 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파국으로 인한 교훈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스스로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후일담이다. -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