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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김려령)

by 하트입술 2015. 8. 23.

 

 

반장 다영이, 이혼가정에서 자란 지란이, 진오, 그리고 계란을 부화시킨 해일이.

 

그 아이들의 이야기.

 

우연처럼 자꾸 나타나 실수로 툭 나온 말인 것처럼 반 아이를 몰아가는 미연과는 확실히 달랐다. 미연은 "제 생각에는요." 하면서 다른 아이를 험담했다. 순진한 척 얼굴을 붉히며 독을 품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연은, "선생님 은근히 인기 많던데, 피자 한번 쏘시죠?"라고 했다. 애초에 자기 의견인 것처럼.

 

"재밌는 건, 자기도 이미 누가 더 나은지 알고 있다는거야. 알고 있으니까 더 싫지. 싫은 사람은 뭘 해도 싫어. 촌스럽게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폄하하고 남은 관심도 없는 걸 굳이 까발려. 나 좀 아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그러는 거 다 읽힌다."

"......."

"그런데 진짜 불쌍한 인간은, 저보다 낫다는 것조차 모르는 인간이야. 이건 머리도 안 되고 사람도 안 된거지. 너는 아주 힘들게 반장 하고 있는데, 누구는 널 시기할 수도 있어. 그런 아이 우리 반에도 몇 있다는 거 안다. 너도 반장 베테랑이니 눈치챘겠지. 그게 그 아이들이 거울에 반응하는 자세니까 신경 쓰지 마라.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 114~5

 

"요즘은 다들 교육을 잘 받아서 능력이나 정보력은 거의 비슷해. 원체 뛰어난 게 아니면 우쭐댈 수 없는거지. 그러니까 이제 사람을 공격해. 자기가 무슨 바로미터나 되는 것철검 모든 걸 자신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헐뜯지. 독사과가 물리적 암살에서 지능적 암살로 바뀐 거다."  - 149

 

아이들도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정류장 한쪽에는 미연이 혼자 서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누군가와 늘 붙어 있지만 밖에서는 혼자였다. 왜 아니겠나. 벌써 열여덟이다. 어지간한 일은 경험할 만큼 했고 사람과의 관계도 영리해졌다. 적으로도 만들지 않고 곁에도 두지 않는, 학교 안에서 다가오는 건 막지 않겠으나 밖에서의 접근은 사양한다.

"주말에 영화 볼래?"

미연이 묻는다.

"미안, 나 약속이 있어."

아이들이 대답한다.

"오늘 끝나고 샐러드바 가자. 학생 전용 생겼다더라."

"미안해. 우리 언니하고 만나기로 했어."

가족이라도 끌여들여 미연의 방과 후 접근을 막았다.

이제 미연은 새로운 얼굴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새얼굴이 나타나면 간 쓸개 다 빼줄 것 처럼 철썩 붙어, 아주 천진하고 확신에 찬 얼굴로 누군가를 마르고 닳도록 씹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구나. 어쩐지 그렇게 보이더라. 웬일이니 재수없다,고 맞장구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다 미연에게 당할 만큼 당한 뒤 이건 아니다 싶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은 엄마랑 어디 가야 돼. 미안." - 276-8